|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 남쪽 정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국 정부의 기후대응 정책 후퇴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가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유엔이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며 반발했다.
21일(현지시각) 유엔 산하 환경 전문기구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6년 배출량 격차 보고서'를 발간했다.
배출량 격차 보고서는 유엔환경계획이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로 2015년 파리협정에서 합의된 기후목표를 달성하는 가상의 경로와 현재 전 세계의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비교해 그 사이에 얼마나 되는 격차가 있는지 확인한 내용을 담은 문서다.
파리협정은 글로벌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아래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기온은 현행 기후대응 정책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2.6도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전년도 예측과 비교하면 0.3도 상향된 것이다.
유엔환경계획은 이번 전망치 변경의 가장 큰 사유로 미국 정부의 기후대응 정책 해체를 꼽았다.
지난해 1월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초 파리협정을 탈퇴하고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등 기후대응 관련 국제기구에도 불참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여기에 더해 국내적으로는 발전소 온실가스 배출 규제, 자동차 배출 기준 등을 철폐하는 등 각종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폐지하고 있다.
이에 유엔환경계획은 미국이 전임 조 바이든 정부 시절에 약속했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그대로 이행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고 2030년 기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를 기존 대비 약 0.9기가톤 상향 조정했다.
0.9기가톤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봤을 때 약 1.5%에 달하며 글로벌 항공산업계 전체의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한국의 2024년 기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약 0.69기가톤)보다도 약 1.4배 높다.
이번 보고서를 접한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을 비판했다.
테일러 로저스 백악관 대변인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유엔이 진보적 이념에 근거한 녹색 에너지 사기극을 부추기고 있다"며 "전 세계 국가들이 자의적 기후목표 달성을 위해 경제와 국가안보를 등한시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유엔환경계획이 제시한 0.3도 상승치 가운데 절반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에서 비롯됐고 나머지 절반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화석연료 사용 증가에 따른 과거 기후예측 모델 업데이트, 계산 방법론 개정에 따른 조정분이었다.
사실상 미국이 기온상승 전망치 상향의 유일한 원흉으로 지목된 셈이다.
유엔환경계획은 지금부터라도 전 세계가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선다고 가정해도 기온상승을 1.7~1.8도 선에서 억제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리협정에서 약속한 1.5도 목표 이행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 ▲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이 1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가장 낙관적 시나리오가 실현되려면 전 세계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5년 대비 약 18% 감축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 모든 나라가 유럽연합(EU), 한국, 일본 등이 세운 것과 같은 수준의 감축 목표를 이행하면 가능한 일이다.
한국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40%로 설정했고 유럽연합은 1990년 대비 55%, 일본은 2013년 대비 46%로 잡았다.
하지만 가장 배출 비중이 큰 미국, 중국, 인도 등은 목표가 없거나 이행 의지가 없기 때문에 유엔환경계획의 시나리오는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인도는 2030년까지 특정 기준연도 대비 정량적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목표 포기를 명확하게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를 보면 이행 의지가 없다고 시각이 우세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관리하는 글로벌 대기연구 데이터베이스(EDGAR)에 따르면 미국, 중국, 인도 등 이들 3개국 배출량만 더해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
안데르센 총장은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5도 목표를 지키는 방향으로 계획을 짜야 한다"며 "그래야만 우리가 1.5도 선을 넘었던 기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를 접한 기후학계 관계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화석연료 업계, 산유국들을 비판하고 각국 정부에 대응 강화를 촉구했다.
빌 헤어 기후 분석 싱크탱크 '클라이밋 애널리틱스' 최고경영자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전 세계 화석연료 생산량의 20~25%를 차지하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은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라며 "그들의 행동은 불길을 외면하고 기름을 더 들이붓는 격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고 그들의 국민들은 점점 더 강해지는 재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한 록스트룀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공동 소장도 가디언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이미 명확하다"며 "온실가스 배출량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행동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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