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6-09-01 16: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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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와 국회가 기업 등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거래하는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의 연내 법제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올해 말 한국거래소에 자발적 탄소시장을 열고 내년에는 최대 20만 톤의 탄소크레딧을 직접 구매하며 초기 시장 조성까지 뒷받침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4월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얼라이언스 출범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다만 정부 지원을 넘어 기업의 자발적 구매 수요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 국내에서 발행한 탄소크레딧이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 코르시아) 등 국제시장에서 실제 활용될 정도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시장 안착의 과제로 꼽힌다.
1일 정치권과 정부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야 간사인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 기획예산처는 자발적 탄소시장법의 연내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배 의원은 8월26일 '자발적 탄소시장 육성 및 자발적 감축실적 거래 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오 의원과 배 의원, 기획처는 같은 달 31일 국회에서 법 제정 방향을 논의하는 토론회도 공동 개최했다. 기획처는 이번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바탕으로 법안이 올해 안에 제정될 수 있도록 국회 입법 과정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정부가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고 거래하도록 하는 배출권거래제(ETS)와 달리 기업이나 기관 등이 의무와 별개로 온실가스를 추가 감축하고 이를 인증받아 탄소크레딧 형태로 거래하는 시장이다.
정부가 별도의 자발적 탄소시장 조성에 나선 것은 기존 배출권거래제만으로 경제 전반의 감축 투자를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내용의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를 의결해 최종 확정했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9100만 톤 줄었지만 2030년 NDC 달성을 위해서는 1억8천만 톤을 추가로 감축해야 한다. 2035년 목표 하한을 달성하려면 2030년 이후에도 1억2천만 톤을 더 줄여야 한다.
기획처는 4월 발표한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조성 방향'에서 낮은 배출권 가격과 공급 과잉 탓에 기업이 직접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하기보다 배출권을 구매할 유인이 크다고 진단했다.
배출권거래제에 포함되지 않는 중소기업의 감축 유인은 더욱 부족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 비규제 기업 300곳 가운데 74.4%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에 기업의 추가 감축 노력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시장을 만들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감축 동력을 넓히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자발적 탄소시장법 제정 △한국거래소 내 거래소 개설 △얼라이언스를 통한 수요 발굴 △중소기업 등 공급자 지원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배 의원 법안은 자발적 감축실적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검증·인증을 받아 등록된 온실가스 감축량으로 정의하고, 탄소크레딧의 검증·인증·등록부터 거래와 소각까지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중복 인증·등록이나 추가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감축실적은 인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평가기관의 품질평가와 평가지표 공개, 부정거래행위 금지 등을 통해 시장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정부의 수요창출 사업과 공공조달 연계, 중소기업의 감축사업 및 국제 탄소규제 대응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담았다.
하지만 시장 기반이 갖춰지더라도 실제 수요가 따라올지는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지난해 1월 2024년 약 14억 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탄소크레딧 시장이 2030년 70억~3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올해 1월에는 2025년 시장 규모가 14억 달러를 조금 웃돌며 4년 연속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고 평가하면서 2030년 전망치를 50억~200억 달러로 제시했다.
대신 품질에 따른 가격 차이는 커지고 있다. MSCI의 BBB 이상 고품질 탄소크레딧 가격지수는 2025년 톤당 6.8달러로 전년보다 20% 넘게 상승한 반면 BB 이하 크레딧 가격은 하락했다. 탄소크레딧 프로젝트 투자와 미래 물량 구매계약 등에 투입·약정된 자금도 지난해 220억 달러로 전년보다 72% 증가했다. 당장의 크레딧 수요는 정체돼 있지만 구매자와 투자자들이 향후 고품질 크레딧 공급을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형 시장에서도 단순히 크레딧을 많이 발행하는 것보다 국제 기준에 맞는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배경이다.
▲ 기획예산처 현판. <기획예산처>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코르시아)는 탄소크레딧의 대표적 수요처 가운데 하나다. 코르시아 적용 대상 국제선 항공사는 국가가 산정한 탄소 상쇄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인정한 적격 탄소크레딧을 확보해 소각해야 한다.
ICAO가 올해 4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코르시아 2단계 가운데 2027~2029년에 사용할 크레딧을 공급할 수 있도록 현재 승인된 프로그램은 미국 ACR과 ART, 골드스탠더드, 베라의 VCS 등 4개다. 국내 프로그램은 승인 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다. 승인된 프로그램에서 발행한 크레딧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발행 시기와 사업 유형, 이중계산 방지를 위한 국가 승인 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배 의원 법안은 자발적 감축실적에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검증·인증을 요구하지만 국내 법제화만으로 코르시아 등 국제제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ICAO 등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확보하고 국내 감축실적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후속 작업이 필요한 셈이다.
초기 수요 부족에는 정부가 직접 마중물을 붓는다.
조용범 기획처 차관은 전날 토론회에서 연간 약 9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중앙정부가 내년 최대 20만 톤의 탄소크레딧을 직접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제거 크레딧을 육성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정부의 직접 구매는 시장 형성 초기의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지만 자발적 탄소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공공부문을 넘어 기업이 크레딧을 구매할 유인이 형성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코르시아 등 실제 탄소크레딧 수요가 발생하는 국제제도에서 국내 감축실적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민간 수요 기반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연내 법제화와 거래소 개설이 국내 자발적 탄소시장의 기본 틀을 만드는 단계라면 이후에는 국제 기준에 맞는 크레딧 품질을 확보하고 정부가 조성한 초기 수요를 민간 구매로 연결하는 과제가 남는다. 국내에서 만든 크레딧이 실제 국내외 수요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느냐가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의 안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