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양윤지 신세계I&C 대표가 비전 인공지능(AI) 기술을 고도화한 AI 계산대를 앞세워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 유통시장 공략에 다시 속도를 낼 채비를 하고 있다.
신세계I&C가 앞서 중동과 동남아시아에서 AI 계산대의 기술적 가능성과 시장 수요를 확인하고도 현지 제도 변화 등의 영향으로 본격적 사업화에 이르지 못했던 만큼 일본 시장은 자체 AI 기술을 해외 매출로 연결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양윤지 신세계I&C 대표(사진)가 AI 계산대의 일본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 매출 기반을 넓히고 그룹 밖 AX사업의 사업화 역량을 입증하면서 향후 그룹 AI 인프라 사업에서 역할을 확대할 기반을 다지려 한다. <신세계I&C>
일본 공략에서 성과를 낸다면 신세계그룹 계열사와 국내 유통기업을 중심으로 축적해온 리테일 IT 역량을 해외 고객사로 확장하면서 양 대표가 추진하는 그룹 밖 인공지능 전환(AX) 사업 확대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정보통신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신세계I&C는 비전 AI 기반 리테일 솔루션의 해외사업 확대를 검토하고 있으며 일본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해외시장 공략의 핵심 제품은 최근 기술 고도화를 마친 ‘스파로스 스캔프리’다.
스캔프리는 셀프 계산대에 상품을 올려놓으면 바코드를 개별적으로 찍지 않아도 비전 AI가 여러 상품을 동시에 인식하는 솔루션이다.
신세계I&C는 기존 1초 수준이던 상품 인식 속도를 0.4초 이내로 줄이고 인식 정확도를 99.5%에서 99.9%로 높였다. 회사 측은 일반 셀프 계산대와 비교해 고객 대기시간을 최대 9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식 가능한 상품도 5천여 종으로 확대했으며 바코드가 없는 제품까지 인식할 수 있다. 별도 서버나 외장 그래픽처리장치(GPU) 없이 매장 안에서 이미지와 영상 데이터를 처리하는 엣지 AI 방식도 적용했다.
현재 스캔프리는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의 스마트 매장에 도입돼 있다. 신세계I&C는 베이커리와 즉석식품 전문점, 생활용품점 등 다양한 유통 매장을 대상으로 추가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신세계I&C가 AI 계산대를 앞세워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중동과 동남아시아에서 AI 계산대의 개념검증(PoC)을 진행해 기술적 가능성과 현장 수요를 확인했지만 현지 결제기기와 개인정보 처리 관련 제도가 바뀌면서 실제 도입 절차에 제약이 생겨 본격적 사업화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기술과 사업모델을 보완해온 신세계I&C는 지난해 10월 비전 AI 리테일 솔루션 사업을 담당하는 AX센터장이 새로 부임한 뒤 해외사업 확대를 다시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신세계I&C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해외사업에서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장 변화와 동향을 살피며 지속적으로 기회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세계I&C가 해외시장 재도전의 첫 승부처로 일본을 주목한 데에는 현지 유통시장의 환경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캐시리스 결제와 셀프 계산대가 상당한 수준으로 확산한 가운데 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유통업계의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DX) 수요도 커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올해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캐시리스 결제 비율은 58.0%까지 높아졌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이 비율을 65%로 끌어올리고 장기적으로는 8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관계 부처와 함께 캐시리스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소매업의 계산대 정산과 매장 운영 등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고 보고 셀프 계산대를 비롯한 자동화·디지털 기술 투자를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양 대표는 이런 시장 환경을 바탕으로 일본 현지 슈퍼마켓과 편의점, 카페, 베이커리 등 프랜차이즈 고객을 발굴해 비전 AI 기반 리테일 솔루션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 사진은 스파로스 스캔프리가 적용된 셀프 계산대에서 제품을 인식하고 있는 모습. <신세계I&C>
해외시장 공략은 신세계I&C가 AX사업을 독자적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신세계I&C의 AX센터는 시스템통합(SI) 및 시스템운영·유지보수(SM), 클라우드 등 기존 사업조직보다 매출 규모가 작은 것으로 파악된다.
AI 사업이 독립적 성장축으로 자리 잡으려면 그룹 내부 수요를 넘어 외부 고객을 확보하고 축적한 기술을 실제 수주와 매출로 연결하는 사업화 역량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0.1% 수준에 그친다는 점에서도 일본시장 공략의 의미는 크다. AI 계산대가 현지에 안착하면 해외 매출 기반을 넓히는 동시에 그룹 내부 사업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외부 고객을 대상으로 AI 기술을 상용화한 경험은 향후 신세계그룹의 AI데이터센터 사업에서 신세계I&C가 역할을 확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I&C는 그룹 계열사 가운데 데이터센터 운영과 IT 인프라 구축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AI데이터센터의 구축·운영과 기술지원 과정에서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신세계그룹은 미국 AI 스타트업 리플렉션AI와 협력해 강원 지역에 250MW 규모의 AI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신세계I&C는 리플렉션AI와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기술 검토를 담당하기도 했다.
신세계I&C가 향후 대규모 AI 인프라 사업에서 역할을 확대하려면 그룹 내부 SI 경험뿐 아니라 외부 고객을 상대로 AI 기술을 사업화하며 관련 인력과 기술, 사업개발 역량을 축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일본 AI 계산대 사업은 해외 매출 확대를 넘어 신세계I&C가 그룹 밖에서 AI 사업화 경험을 쌓고 독자적 AX사업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 대표는 지난 7월 스파로스 스캔프리를 공개하며 “무인 매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솔루션 고도화를 마친 만큼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예정”이라며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에이전트 기능을 결합해 고객 응대와 상품 안내, 매장 운영까지 지원하는 확장형 솔루션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