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 기자 bamco@businesspost.co.kr2026-04-12 06:00:00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1987년 민주화 이후 40년 가까이 멈춰 있던 개헌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 이전에 국회 문턱을 먼저 넘어야 하는데 결국 국민의힘의 선택이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진영을 넘어서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정치적 셈법이 맞물리면서 ‘마지막 관문’ 앞에서 번번이 멈춰왔던 과거가 이번에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시선이 나온다.
▲ 우원식 국회의장과 국회 내 정당 원내대표들이 3월31일 국회에서 개헌 추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국민의힘을 제외한 6개 정당과 무소속 의원 등 187명이 발의한 개헌안을 두고 결국 국회 통과는 국민의힘에 달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개헌안’(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은 △헌법 제명 한글화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명시 △국회의 계엄 승인권 도입과 계엄해제 요구권을 해제권으로 격상 △지역 간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 의무 명시하는 내용 등을 뼈대로 한다.
절차적으로도 개헌은 이미 반환점을 돌았다.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 과반 발의, 20일 이상 공고라는 1·2단계를 넘겼고 이제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안에 진행해야 하는 국회 의결과 국회 의결 후 20일 이내에 실시해야 하는 국민투표만 남았다.
개헌안이 5월4일부터 5월10일 사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6월3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하지만 핵심 변수는 여전히 국민의힘이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295명 중 3분의 2인 197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석이 107석인 점을 고려하면 최소 10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한다.
국민의힘은 이번 부분개헌 추진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의 연임·중임 가능성을 문제 삼고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민생경제 협의체 회담에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이 대통령은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민생경제협의회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에게 개헌에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장 대표는 이 대통령을 향해 연임 및 중임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먼저 밝히라고 맞섰다.
장 대표는 입장 표명을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의 연임·중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헌법은 128조 8항에서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1987년 9차 개헌 당시 권력 연장을 위해 개헌 남용을 남용했던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위해 도입됐다.
한국의 개헌사는 권력 구조와 긴밀히 얽혀 있다. 특히 2차 개헌(이승만 정부 사사오입 개헌), 6차 개헌(박정희 정부 3선 개헌), 7차 개헌(박정희 정부 유신헌법 개헌), 8차 개헌(전두환 정부 대통령 간선제 개헌) 등은 독재 권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현행 헌법 체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이뤄진 9차 개헌의 결과물이다.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첫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고, 이를 기점으로 한국 정치가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한편 민주화 이후에도 개헌 필요성은 반복적으로 제기됐지만 번번이 가로막혔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내각제 개헌에 합의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무산됐다. 1997년 DJP연합(김대중·김종필 연합) 역시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지만 집권 이후 정국 갈등 속에 DJP연합만 깨지고 개헌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2007년), 박근혜 정부의 4년 중임제 개헌 구상 선언(2016년), 문재인 정부의 정부 개헌안 발의(2018년) 역시 모두 정치적 변수에 막혀 결실을 맺지 못했다. 특히 2018년에는 국회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표결 자체가 불성립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현재로서는 이번 개헌 논의 역시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번에는 국민 여론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권이 더 이상 개헌을 미룰 명분이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원씨앤아이가 8일 발표한 국회 개헌안 추진 찬반 여론조사에서 ‘찬성’ 61.1%, ‘반대’ 30.8%, ‘모름’ 8.0% 등으로 집계됐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균열 조짐은 감지된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당내에서 처음으로 개헌 협조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국민의힘이 국민만을 바라보고 개헌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며 “개헌안 핵심 취지는 위헌·위법 비상계엄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당 지도부의 반대는 ‘절윤 결의문’ 무효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관건은 이러한 균열이 얼마나 확산하느냐이다. 개헌안 국회 의결은 기명투표라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개헌안을 반대한다면 이탈표가 많이 나오기 어렵다. 당론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이탈표가 많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도 있다. 국민의힘 다수 의원이 5·18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담은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제한하는 데도 마뜩치 않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4일부터 6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는 ARS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