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은 K푸드 낳은 라면업계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
[비즈니스포스트] 지난해 한국 라면이 국내 식품업계 수출을 이끄는 등 세계 K-푸드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13억6천만 달러(약 1조9900억 원)를 기록해 K-푸드 14개 주요 품목군 가운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제품이 해외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내수시장에서의 대중적 성공과 그를 바탕으로 한 검증 과정이 필수적이다. 현재 해외에서 선풍적 인기 끌고 있는 ‘불닭볶음면’ 역시 국내 성공을 바탕으로 K-컬쳐를 타고 해외로 뻗어 나간 대표적 사례다.
◆ 삼양공업 국내 첫 인스턴트 라면 출시, 농심의 추격
6일 비즈니스포스트는 대표 K-푸드라면 제품들을 키워낸 국내 라면업계 변천사를 살펴봤다.
국내 최초 인스턴트 라면은 1963년 삼양공업(현 삼양식품)이 일본 묘조식품에서 기술과 기계를 도입해 출시한 ‘삼양라면’이다. 창업주 전중윤 회장은 식량 문제 해결에 뜻을 두고 1개당 10원에 삼양라면을 내놨다. 당시 곰탕 1그릇이 50원, 짜장면은 30원이었다.
▲ 1963년 9월 삼양공업이 출시한 국내 최초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 <삼양식품> |
하지만 인스턴트 라면은 출시 초기 밥과 국에 익숙했던 당시 소비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삼양공업이 극장, 공원 등 곳곳에서 펼친 라면 무료시식회가 큰 호응을 얻었고, 1966년 시작된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은 국내 라면 대중화의 도화선이 됐다.
삼양라면이 주목을 받으면서 업계엔 롯데공업(현 농심)이 1965년 출시한 ‘롯데라면’을 비롯해 ‘풍년라면’, ‘닭표라면’, ‘해표라면’, ‘아리랑라면’, ‘해피라면’, ‘스타라면’ 등 8개 제품이 잇따라 쏟아져 나왔다. 다만 삼양식품이 80% 넘는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지킨 가운데 나머지업체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고 1969년엔 삼양공업과 롯데공업만이 살아남게 됐다.
롯데공업은 1970년 2월 국내 최초 짜장라면인 ‘롯데 짜장면’을 내놓고 추격에 나섰지만 그해 3월 삼양공업이 ‘삼양 짜장면’을 출시하면서 그 인기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롯데공업은 같은 해 10월 닭 육수 제품이 대부분이던 라면 시장에 소고기 국물 맛을 낸 ‘소고기라면’을 내놓고 10%대에 머물던 라면시장 점유율을 20%대로 끌어올렸다. 1975년 출시한 ‘농심라면’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 카피로 화제를 모으며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롯데공업은 1978년 아예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애초 라면사업 추진을 놓고 형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갈등을 겪었는데 롯데그룹과 겹치는 스낵사업에도 진출하면서 형제 사이 갈등이 커졌다. 그러다
신격호 회장이 롯데 사명을 쓰지 못하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 농심 강력한 신제품 출시로 1위 등극, 팔도·오뚜기·빙그레 참전
농심은 1982년 ‘너구리’, 1983년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1986년 ‘신라면’ 등 여태껏 라면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는 히트 제품들을 내놓으며 1985년 삼양식품공업으로부터 업계 1위 자리를 빼앗았다.
1985년 3월 라면시장 점유율은 농심 40.4%, 삼양식품공업 39.6%를 기록했다. 특히 신라면은 1991년 국내 라면 판매 1위에 오른 뒤 현재도 3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1993년 방영된 빙그레 캡틴 TV 광고. <빙그레> |
1980년대엔 팔도와 오뚜기, 빙그레 등도 잇따라 라면업계에 뛰어들며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한국야쿠르트(현 hy)는 1984년 ‘팔도 비빔면’을, 오뚜기는 1988년 ‘진라면’을 내놓으며 라면사업에 발을 들였다. 빙그레는 일본 닛신식품과 라면사업 기술 제휴를 통해 1986년 ‘우리집 라면’을 출시했다.
오뚜기는 진라면, 팔도는 비빔면을 앞세워 현재도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 2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농심의 독주가 지속되는 가운데 후발업체 오뚜기가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면서 2002년 빙그레의 라면 시장점유율은 3%까지 떨어졌다. 결국 빙그레는 2003년 풀무원에 라면사업을 양도하고 전면 철수했다.
빙그레가 라면사업을 운영한 기간은 20년이 채 되지 않지만 치열한 판촉경쟁을 벌였던 캡틴라면, 뉴면, 매운콩라면 등은 40대 이상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익숙한 제품으로 남아 있다.
◆ 라면계의 슈가맨 ‘꼬꼬면’, K-컬처 타고 날아오르는 ‘불닭볶음면’
농심은 1988년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섰고, 1990년대 오징어짬뽕, 생생우동, 신라면컵 등 신제품으로 국내 입지를 더욱 단단히 했다. 지난해 농심의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은 56.3%를 보였다.
2000년대 들어 절대 강자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4개 주요업체가 시장을 과점한 가운데 2011년 업계에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이 불었다.
▲ 2011년 8월 출시된 팔도 꼬꼬면 제품 이미지. <팔도> |
2011년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팔도가 방송인 이경규와 협업해 출시한 ‘꼬꼬면’이 3개월 만에 점유율 20%를 넘어서며 선풍적 인기를 끈 것이다. 판매량은 168일 만에 1억 개를 돌파했다. 한국야쿠르트는 이를 도약의 기회로 보고 2012년 1월1일자로 ‘팔도’를 별도 법인으로 분할하기도 했다.
다만 방송 화제성 등에 힘입은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출시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점유율이 1%대까지 떨어졌다.
꼬꼬면 출시 이듬해인 2012년엔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이 출시됐다. 불닭볶음면은 하얀 국물의 꼬꼬면과 정반대로 매운 맛을 강조하고 스코빌 지수를 제품에 직접 표기하는 등 매운 맛을 마케팅 전면에 앞세웠다.
불닭볶음면은 2010년대 들어 강화한 국내 매운 음식 선호 추세와 맞물려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2013년 배우 이성재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먹는 모습이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2014년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의 불닭볶음면 먹방이 유튜버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해외에서도 본격 이름을 알렸다.
▲ 해외 소비자가 ‘불닭’ 브랜드 제품을 들고 있는 모습. <삼양식품> |
불닭볶음면 수출 호조에 힘입어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은 2016년 900억 원대에서 지난해 1조3359억 원까지 증가했다.
증권업계에선 꼬꼬면과 달리 불닭볶음면의 인기는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김진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불닭볶음면은 2010년대 국내 트렌드를 관통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인기를 얻었다”며 “현재 해외에서 한류 수용성이 지속 확대되는 가운데 매운맛을 과거보다 더 선호하고, 과감한 시도를 공유하는 트렌드가 관찰되는 등 2010년 이후 한국과 유사한 환경이 갖춰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은 단기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소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