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4일 오전 호소문을 내어 “대통령실은 경찰·공수처와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대통령에 대한 제3의 장소에서의 조사 또는 방문조사 등을 모두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공수처의 조사에 불응하겠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다만 윤 대통령 법률대리인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연합뉴스에 정 비사실장의 입장문을 두고 “상의하거나 검토된 바 없다”고 말했다.
정 비서실장의 갑작스런 호소문 발표를 두고 정치권에서 또다른 시간벌기 꼼수로 바라봤다. 공수처와 경찰의 체포영장 재집행이 임박한 상황에서 마치 협상안을 제시한 모양새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정 비서실장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언급하며 “폭압적인 위협에 윤석열 대통령이 무릎을 꿇어야 합니까”라며 “공수처와 경찰의 목적이 정말 수사입니까, 아니면 대통령 망신주기입니까”라고 말했다.
제3 장소 조사 제안은 공수처가 두 번째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뒤 펼친 압박 전술로 경호처 내부가 동요하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장성철 공론센터소장은 1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뉴스쇼에서 “경호원들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보니 윤 대통령이 ‘체포당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 끌기든 뭐든, 다른 방법으로 ‘조사에 나가겠다고 해볼까?’라는 차원에서 정 비서실장의 입장문이 나온 것”이라고 바라봤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제3의 장소' 제안을 맹비난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정 비서실장이 경찰과 공수처를 향해 ‘대통령을 수갑 채워 끌고나가려한다’고 했는데 법원의 적법한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경호관을 방패로 관저에서 버티는 윤석열이 스스로 부른 결과”라고 주장했다.
야권의 반발은 김건희 여사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중앙지검은 2024년 7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혐의와 관련해 김건희씨를 제3의 장소에서 조사했다. 당시 검사들은 휴대폰조차 반납한 채 조사를 진행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1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윤석열이 (공수처가) 한남동 (관저)에 들어와 똑같이 휴대폰 뺏긴 채 조사하는 걸 원한다는 건데 체포영장 (집행) 직전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날 열린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첫 변론을 앞두고 또 다른 차원의 시간 끌기를 시도했다.
▲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인 14일 오후 윤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앞줄 왼쪽부터)ㅂ배보윤, 윤갑근 변호사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 측은 정계선 헌법재판관에 대해 배우자 이력 등을 이유로 기피를 신청하는 동시에 신속한 심리를 위한 헌재의 변론기일 일괄지정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를 곧바로 기각했다.
헌재는 이날 오후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첫 변론기일에서 "기피 신청이 신청된 헌법재판관을 제외한 7분의 일치된 의견으로 재판관 기피 신청을 기각했으며 그 결정문을 오전 중에 송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변론기일 일괄지정을 두고도 "변론 기일 일괄 고지·지정은 헌법재판소법 30조 4항, 헌법재판소 심판 규칙 21조 1항에 근거한 것"이라며 사실상 일축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첫 변론에 불출석했지만 헌재의 심리 일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오늘은 피청구인(윤석열)이 출석하지 않았으므로 헌법재판소법 52조 1항에 따라 변론을 진행하지 않겠다"며 "다음 변론 기일에 당사자들이 출석하지 않더라도 변론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그동안 3차에 걸인 공수처의 소환조사에 불응하고 헌재에 갖가지 이의제기를 통해 시간 끌기 전략을 이어왔다. 하지만 헌재는 흔들림 없이 심리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공수처도 체포영장 2차 집행을 목전에 앞두고 있다.
요컨대 한두 주일 동안 시간을 벌었지만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가 펼쳐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도 유혈 사태가 우려된다며 윤 대통령 ‘불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연합뉴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1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일(15일) 체포영장 집행이 예정돼 있다고 하는데, 불구속으로 임의 수사를 하는 게 가장 옳다”며 “유혈 사태는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걸 유의해야 하고 세 기관이 만난 건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공수처와 경찰이 15일에 체포영장을 재집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실제 체포영장 집행이 이뤄진다면 12·3 계엄선포 이후 이어진 윤 대통령의 시간 끌기는 사실상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YTN 뉴스정면승부에서 "준비 절차에 있어서 헌법재판관들의 말씀을 좀 종합해 보면 신속하게 처리해야 된다는 그런 의지는 분명한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