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와 기아의 경차 캐스퍼와 레이는 내년부터 전기차로 제품군을 확대하며 경차 시장 확대에 더욱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캐스퍼(왼쪽)와 기아 레이.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경차 캐스퍼와 레이가 판매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두 차량은 내년부터 전기차로 제품군을 확대하며 경차 시장 확대에 더욱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캐스퍼와 레이는 7월 월간 판매 신기록을 세우며 전체 경차 시장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캐스퍼는 지난달 4478대가 팔리며 지난해 9월 첫 출시 뒤 최다판매 기록을 새로썼다. 2011년 말 판매를 시작한 레이는 7월 4125대가 팔렸다. 2012년 4월 4086대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이에 힘입어 경차 시장은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카이즈유데이터센터 자료를 보면 7월 차급별 신차등록 대수에서 경차는 지난해 7월보다 60.7% 증가한 1만3247대를 기록했다.
이외 소형차 판매가 13.7% 증가했을 뿐 모든 차급에서 판매량이 뒷걸음치며 전체 판매량이 4.4%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경차의 선전이 돋보인다.
올해 상반기 경차는 6만6627대 팔려 1년 전보다 34.1% 늘었는데 하반기 시작하면서부터 판매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이전까지 경차 시장은 오랜 기간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국내 경차 판매량은 2012년 20만2844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에는 9만7072대로 10만 대 선이 무너졌고 지난해에도 9만5565대에 그쳤다.
캐스퍼와 레이의 판매질주에 힙입어 경차는 올해 들어 7월까지 7만8168대가 팔렸다. 2019년 뒤 3년 만에 판매 10만 대 돌파가 매우 유력해 보인다.
경차 시장이 부활 조짐을 보이는 요인으로는 기존에 없던 신차 캐스퍼 출시에 따른 신차효과를 들 수 있다.
기아 모닝과 한국GM 스파크, 기아 레이는 각각 2004년, 2009년(당시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2011년에 출시됐다. 그나마 최근 출시된 레이는 2017년 한번의 부분변경을 거쳤을 뿐 완전변경(풀체인지)은 없었다.
노후화된 경차 시장에서 개성있는 디자인에 경형 차급으로는 처음 출시된 SUV 모델 캐스퍼는 소비자의 시선을 집중시킬 조건을 갖췄던 셈이다.
캐스퍼는 올해 1~7월 2만7678대가 판매되며 경차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전체 차종으로 범위를 넓혀도 쏘렌토와 스포티지에 이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경쟁차종인 캐스퍼가 출시됐음에도 지난해까지 경차 시장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던 터줏대감 레이 역시 판매량을 늘렸다.
레이는 올 1~7월 2만6100대 팔리며 캐스퍼가 등장하기 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17.1% 증가했다.
캐스퍼 출시로 외면받던 경차에 다시 쏠린 소비자의 관심이 레이의 판매 확대로도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등 부품 공급 부족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차를 계약하고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일이 흔해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경차의 출고기간이 짧은 점도 인기 요인으로 분석된다.
현대차와 기아 영업소의 8월 납기정보에 따르면 8월1일 기준 차를 계약하면 모든 사양에서 캐스퍼는 3주, 레이는 3.5개월 만에 차를 받을 수 있다. 레이 1인승 밴, 기아 모닝도 각각 2개월, 2.5개월이면 고객에게 차량 인도된다.
또 고물가 시대가 펼쳐지면서 경차의 싼 가격과 저렴한 세금 및 보험료, 고속도로 통행료 혜택 등의 장점도 더욱 부각되고 있다.
다만 경차는 캐스퍼, 레이, 모닝, 스파크 등 국내 차급 가운데 가장 적은 4개 차종만이 판매되고 있어 소비자 선택의 폭이 좁아 판매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시선이 많다.
더욱이 한국GM의 경차 스파크는 올해 1~7월 6745대가 팔려 지난해(1만2227대)보다 판매량이 절반 가까이 꺾이면서 단종설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GM은 스파크를 만들던 창원 공장에 1조 원 가량을 투입해 내년부터 양산될 CUV(크로스오버유틸리티 차량) 신차 생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스파크 단종설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현대차와 기아는 확실한 경차 수요를 확보하고 있는 캐스퍼와 레이의 새 모델을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어 경차 시장에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는 9월 초 출시하는 레이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의 디자인을 최근 공개했다. 앞면에는 전체의 수평·수직적 견고함을 강조한 램프 조형인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배치하고 뒷면에는 입체감 있는 차체에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강조한 콤비 램프를 적용했다.
앞서 기아는 레이 부분변경 모델에 5인승 풀플랫(모든 좌석을 평평하게 접을 수 있는 모델)을 적용해 차박이나 파트타임 배송 등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을 바 있다. 레이는 이번 부분변경을 통해 얼굴을 새롭게 하고 공간 활용성을 크게 키워 판매량을 더욱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뿐 아니라 레이와 캐스퍼는 전기차로 파워트레인(구동장치)을 확장하며 소비자의 선택지를 크게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기아는 올해 3월 인베스터데이에서 내년 레이 전기차 출시를 공식화한 데 이어 현재 고객들을 대상으로 '레이EV를 활용한 목적기반차량(PBV)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하며 양산을 위한 사전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캐스퍼 전기차도 머지않아 출시될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올해 시험용 차량을 생산하고 2024년에는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경형 전기차의 출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아는 2012년 국내 최초 민수용 양산 전기차이자 유일한 경형 전기차인 구형 레이EV를 출시했었다. 16kWh(킬로와트시) 배터리를 탑재한 구형 레이EV는 100km가 채 안되는 짧은 운항거리와 잦은 고장으로 약 2천 대가 판매되는데 그치며 2018년 단종 수순을 밟았다. 그뒤 현대차그룹이 높은 전기차 기술력을 축적해온 만큼 새로운 경형 전기차는 성능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비자가 경차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저렴한 초기 구입비용에 있는 만큼 경형 전기차 가격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