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대외적 경제 요인에 취약한 한국 경제의 특성상…”, “대외적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한국 경제의 주요 지표를 논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문구다. 한국 경제의 사령탑인 기획재정부가 자신들의 성적표인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등을 발표할 때도 ‘전가(傳家)의 보도’처럼 쓰인다.
그런데 대외적 여건에 취약한 한국 경제의 특성은 한국전력공사와 같은 공기업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21일 결론이 나기로 예정됐던 올해 3분기 전기요금 결정이 연기됐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0일 전기요금 결정 연기 사실을 알리면서 “한전의 자구노력을 점검하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며 “한전 스스로 왜 지난 5년간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한전의 자성은 필요하다. 다만 한전의 대규모 영업손실에 자성해야 하는 곳이 한전뿐인지는 의문이 든다.
한전의 대규모 영업손실의 근본 원인은 에너지 원가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비싼 값에 사서 싸게 파는’ 한전의 전력 공급 방식에 있다. 이미 여러 언론이 수많은 기사를 통해 알렸고 심지어 산업통상자원부 등 같은 정부 안에서도 이런 진단을 내놨다.
산업부는 지난 5월24일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공고하면서 전력도매가격(SMP)이 2022년 4월에 kWh당 202.1원까지 급등해 2021년 평균 전기요금 kWh당 108.1원의 2배에 육박할 정도로 올랐다는 점을 제도 도입의 이유로 제시했다.
전력도매가격의 급등을 고려하면 전력 구매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전기요금를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필수 소비재화인 전력을 판매하는 한전의 사업 특성을 고려하면 조 단위의 영업손실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한전의 입장에서는 전력을 사오는 가격이나 파는 가격 모두 ‘대외 요인’이다.
전력을 사오는 가격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인 국제유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은 세계적 시세가 급등했다. 정부도 어쩔 수 없는 대외적 변수다.
전력을 파는 가격 역시 정작 한전에게는 결정 권한이 없다.
전기요금은 한전이 분기마다 전력요금 산정안을 제시하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관계부처인 기재부가 논의해 결정한다.
그리고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기재부는 ‘물가 안정’을 내세워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왔다.
추 부총리 역시 지난 19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철도, 우편, 상하수도 등 중앙 및 지방 공공요금은 하반기 동결을 원칙으로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며 “전기, 가스요금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 등을 통해 인상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을 막아온 기재부의 수장인 추 부총리가 전기요금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한전을 향해 자성하라는 것은 적반하장이라 할 수도 있다.
특히 에너지, 교통 등 국가의 주요 기간사업을 담당하는 공기업은 손해가 나더라도 담당하고 있는 재화를 안정적 가격으로 필요한 물량을 공급해야 한다. 이는 해당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공기업의 존재의의이다.
한국가스공사의 가스 도입가격 평균이 민간기업들 보다 높다는 지적이 나오자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은 지난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가스공사는 공급의무가 있어 가스 시세가 높아져도 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는 한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설명일 것이다.
한전이 비싼 전력도매가격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싸게 팔면서 적자를 쌓았지만 그동안 국민이 싸게 전기를 사용했다는 복지적 측면과 기업의 생산 원가를 낮춰 물가 상승을 낮추는 등 한국 경제에 미쳤던 긍정적 효과도 생각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국제유가 등 에너지 원가 급등에 따른 대외적 변수는 한전을 넘어 올해 한국의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등 주요 경제지표를 놓고 암울한 전망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기재부도 지난 17일 내놓은 ‘2022년 6월 최근 경제동향’에서 “대외여건 악화 등으로 높은 물가상승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투자부진 및 수출회복세 약화 등 경기 둔화 우려가 있다”며 “대외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인플레 압력이 지속 확대되는 가운데 미국의 큰 폭 금리 인상 등 주요국 통화정책 전환 본격 가속화, 공급망 차질 지속 등으로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및 글로벌 경기 하방위험이 더욱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한 해가 지나고 2022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등 기재부의 성적표가 나왔을 때 추 부총리는 ‘대외적 여건’을 언급할까? 아니면 기재부의 ‘자성’을 언급할까?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