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사장은 마케팅 전문가로 한진그룹의 보수적 그룹 이미지를 젊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주도적으로 기획한 ‘중국, 중원에서 답을 얻다’, ‘지금 나는 호주에 있다’ 등의 광고는 여행 열풍을 점화시킨 기폭제가 됐다.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대한항공의 이름으로 후원하고 진에어 승무원들의 복장을 항공사 최초로 청바지와 티셔츠로 바꾸면서 젊은 세대에게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확 바꾸기도 했다.
한진 마케팅 담당으로 복귀한 뒤에도 택배업계가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물류와 문화를 결합한 ‘로지테인먼트(Logistics+Entertainment)’를 구축하면서 새 길을 만들고 있다.
한진이 국내 택배업계 최초로 내놓은 ‘택배왕 아일랜드’와 카카오톡 이모티콘도 모두 조 사장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같은 공적에도 그를 따라다니는 ‘물컵 갑횡포’라는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고 한진그룹 경영권을 위태롭게 만드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한진그룹과 몇 년째 질긴 악연을 이어가고 있는 KCGI는 최근 내놓은 주주제안을 통해 조 사장의 사장 선임을 비판했다.
KCGI는 “한진의 조현민 사장 선임은 과거의 후진적인 지배구조로 회귀다”며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사를 계열회사 사장으로 선임하는 것은 기업가치와 회사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KCGI는 이러한 기업가치 훼손 행태를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KCGI는 앞서 2019년과 조 사장이 물컵 갑횡포 이후 한진그룹에 복귀할 때, 2020년 한진칼 전무를 비롯해 한진그룹 안에서 4개의 임원직을 맡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KCGI는 그레이스홀딩스라는 투자목적회사를 통해 한진칼 지분을 17.41% 들고 있다. 한진칼은 한진의 최대 주주로 한진 지분 24.16%를 보유하고 있다.
조 사장의 한진그룹 내 거취와 관련해 반기를 든 건 KCGI뿐만 아니다.
한진의 2대 주주인 HYK파트너스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당시 조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하기도 했다.
HYK파트너스는 정기 주주총회에 올린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수 확대와 신규이사 선임을 제안하는 배경을 두고 재벌일가 중심의 폐쇄적 경영에 적절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진은 주주총회에서 조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제외했다.
한진그룹과 조 사장도 물컵 갑횡포 논란 이후 가만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진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발표한 '2021년 ESG평가'에서 환경(E)은 A등급, 사회책임(S)은 B+등급, 지배구조(G)는 A등급을 받아 통합 A등급을 받았다.
A등급은 모두 7단계의 등급 가운데 S등급과 A+등급 다음으로 3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지난해 각각 B, C, B+등급을 받으며 통합 B등급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모든 항목에서 개선된 것이다.
ESG등급 개선에 큰 힘을 보탠 건 다름 아닌 조 사장이다. 그는 2019년 한진그룹에 복귀하면서 ESG경영을 살뜰히 챙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류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및 오염물질를 감축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 등 공유가치(CSV) 창출에 초점을 맞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함안수박 CSV’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코로나19로 침체된 농촌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아 농협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으며 경찰청과 협력을 통해 장기실종 아동찾기활동 '호프테이프(Hope-Tape)'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조 사장이 이같이 다방면으로 노력하기는 했지만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물컵'이 지워지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한진그룹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국내 양대 대형항공사를 통합한 통합항공사로 새 시작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ESG경영은 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낙인을 지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심어린 반성과 태도의 변화는 종종 그 어려운 일을 성공시키기도 한다.
주홍글씨의 헤스터 프린은 벌을 받은 뒤 선행을 베푸는 데 매진하면서 점차 동네 사람들의 평판이 개선된다.
낙인과도 같았던 알파벳 ‘A’는 Adultery(간통)에서 Able(유능함)이나 Angel(천사)로 의미가 바뀌었다.
조현민 사장에게 '물컵'이 주홍글씨가 아닌 변화의 시작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