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참여자를 모집해야 하는 채권단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싱가포르 조선사 케펠(Keppel)이 한국 중형조선사 인수를 시도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의 전경. < STX조선해양 >
8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이 곧 공개매각 절차를 밟는다.
매각 대상은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STX조선해양 지분 100%다. 예상 매각가격은 4천억 원 안팎으로 거론된다.
STX조선해양 지분 35.26%를 보유한 최대주주 산업은행이 늦어도 12월 안에 본입찰을 진행하려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11월 안에는 매각공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이번 매각을 스토킹호스(우선매수권자를 미리 선정한 뒤 공개입찰을 거쳐 선정한 우선협상대상자와 재차 가격경쟁을 붙이는 방식)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 유암코(연합자산관리)와 KHI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우선매수권자로 유력하다고 여겨진다. 유암코 컨소시엄이 예비인수자 계약을 11월 안에 체결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만큼 산업은행이 STX조선해양의 매각을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개입찰에서 유암코 컨소시엄과 STX조선해양 인수를 다툴 경쟁자가 나타난다면 중형조선사의 주인 찾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흥행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만큼 산업은행으로서는 최고의 시나리오다.
최근 싱가포르 해양플랜트 조선사 케펠이 한국 중형조선사 인수전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케펠이 한국 중형조선사 인수를 노리고 있다는 말은 이전부터 국내 조선업계에서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그런데 앞서 10월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이와 관련한 연구보고서를 내자 케펠의 한국 중형조선사 인수는 단순한 가능성 수준이 아닐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페이화호 싱가포르개발은행 연구원은 “케펠오프쇼어&마린(Keppel Offshore&Marine, 케펠 해양부문)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한국 중형조선사의 인수합병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며 “인수합병 대상이 될 한국 조선사는 케펠의 글로벌 네트워크 수주에 활용할 수 있으며 케펠오프쇼어&마린은 한국의 낮은 철강가격을 활용해 해양플랜트 선체 건조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파악했다.
현재 국내 중형조선사들 가운데 성동조선해양은 지난해 이미 HSG중공업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대선조선은 부산 향토기업인 동일철강 컨소시엄이 인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한진중공업은 상선부문이 없다.
케펠이 한국 중형조선사를 노린다면 STX조선해양과 대한조선 정도가 남은 셈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비용을 절감하고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케펠에게 한국 조선사는 매력적 매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STX조선해양이 아니라도 아직 대한조선이 남아있는 만큼 케펠은 중형조선사의 새 주인 찾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중형조선사 인수를 위한 입찰에 참여한다면 케펠이 전략적투자자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케펠은 셈코프마린(Sembcorp Marine)과 함께 싱가포르 양대 조선소로 꼽힌다. 케펠의 해양부문은 해양플랜트 가운데서도 특히 잭업리그(수심이 얕은 지역의 해양유전 시추설비) 건조에 잔뼈가 굵다.
그러나 중국 조선사들이 잭업리그 건조시장에 점차 발을 들이며 가격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싱가포르 국영투자사 테마섹(Temasek)은 2019년부터 케펠과 셈코프마린을 합병하는 조선업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케펠오프쇼어&마린이 2020년 상반기에만 3억9천만 달러(4440억 원가량)의 영업손실을 내자 양대 조선사의 합병에 앞서 케펠의 경쟁력 회복이 테마섹의 선결과제로 떠올랐다.
싱가포르개발은행은 케펠 지분 15.48%를 보유한 2대주주다. 싱가포르 모든 회사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테마섹을 제외하면 케펠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만큼 인수합병과 관련해서도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싱가포르개발은행이 한국 중형조선사 인수를 케펠의 경쟁력 회복방안으로 제시한 만큼 국내 조선업계도 단순한 가능성 이상의 무게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만 채권단이나 중형조선사 모두 케펠을 새 주인으로 맞이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길 수도 있다.
국내 조선사가 해외 조선소를 운영한 사례는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조선소, 대우조선해양의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 STX조선해양의 프랑스 생나자르조선소 등 선례가 있다.
수빅조선소는 한진중공업 경영 악화의 직접적 원인이 됐으며 망갈리아조선소와 생나자르조선소는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이 채권단의 관리를 받게 되는 과정에서 매각됐다. 하나같이 결과가 좋지 않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