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2인자의 행보는 늘 화제가 된다. 숙명적으로 1인자의 뜻을 따라야 하지만 그 의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2인자다.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35년 동안 몸담았던 현대차를 떠나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겼다. 그룹 세대교체의 물꼬를 튼 것과 동시에 현대제철 도약이라는 중대한 책임도 안았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현대제철을 이끌면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은 9년 만에 사령탑이 바뀌었다.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우유철 부회장과
강학서 사장이 각각 현대로템 부회장, 현대제철 고문으로 이동했다.
김 부회장이 단독대표를 맡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현대제철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 추세와 중국의 감산정책 완화 등이 철강업계를 위협하고 있는 데다 국내 철강산업은 성장의 활력을 잃었다.
우유철 부회장은 최근 국회철강포럼 정책토론회에서 “철강사업은 내우외환의 위기에 봉착했다”며 “지금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수시장이 성숙기를 지나 사실상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국내 철강 수요는 2008년 5900만 톤으로 정점을 찍고는 계속 하락세지만 생산능력은 반대로 같은 해부터 지속적으로 늘어 지난해 8400만 톤을 보였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철강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극지 해양용 강재나 LNG 특화 제품 등 고부가가치의 기능성 제품에 주력하려고 한다”며 “전기차 배터리 보호재 등 신소재 부품 개발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으로서는 철강사업 본원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신사업도 안착시켜야 하는 숙제를 이어받았다.
김 부회장은 오직 ‘실력’으로 부회장에 오른 전문경영인으로 평가되는 만큼 업계에서 기대가 높다. 전략기획담당으로서 모든 계열사의 정보를 장악하고 조율해와 업무 이해도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해온 최측근이다. 정 회장은 2인자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김 부회장은 사실상 오른팔로 인정받아 왔다.
2009년 12월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과 함께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해 비서실과 전략기획, 감사실, 법무실, 구매 담당 등을 두루 살피며 그룹 안살림을 총괄했다.
그런 김 부회장이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긴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세대교체의 물결에 밀려났다는 시각도 있다. 정 수석부회장의 새 시대가 열린 만큼 과거 인물들의 역할 축소는 예상된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정몽구 회장의 ‘복심’인 김 부회장의 결단일 수도 있다. 2인자의 덕목은 1인자의 생각과 필요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움직이는 섬김의 리더십이다.
지금 현대차그룹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김 부회장이 먼저 자리를 비켜줘야 경영권 승계도 순조로워지는 데다 그룹 계열사 매출 4위인 현대제철의 위기 돌파도 중요하다.
이번 인사에 김 부회장이 수동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직접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