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창욱 법무법인 지평 컴플라이언스팀장 변호사는 현재 한국에서는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의 하나인 기후 관련 주주제안 활동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지평> |
[비즈니스포스트] 최근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기업에 투자를 철회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네덜란드의 주주행동단체 팔로우디스(Follow This)도 글로벌 메이저 석유기업인 미국 엑손모빌(ExxonMobil)과 셰브론(CHEVRON)에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에 부합하는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주제안을 했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주주들의 기후행동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주주들의 기후행동이 좀처럼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엑손모빌 주주총회에서 팔로우디스의 주주제안 결의안에 엑손모빌 주주들 가운데 11%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비슷한 결의안을 다룬 셰브론의 주주들도 10%가 찬성하는 데 그쳤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하다. 주주제안과 같은 주주들이 법적 기후행동이 애초에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비즈니스포스트는 1일 기후변화에 관한 아시아 투자자그룹(AIGCC)의 '아시아 주주제안 법제 보고서'에 참여한 법무법인 지평의 민창욱 변호사를 만나 이유를 물었다.
민 변호사는 해외보다 주주제안의 문턱이 높은 게 문제라고 짚었다. 특히 상법상으로 형식적 요건과 내용적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우선 상법이나 각 기업의 정관에서 정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주주만이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민 변호사는 “주주제안권이란 경영진과 주주들이 만나는 자리인 주주총회의 의결사항을 일정한 요건을 지닌 주주가 제안하는 것”이라며 “아무나 안건을 제안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상장회사에서는 기업 규모에 따라 0.5% 또는 1% 이상의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나 3%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만이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비상장회사에서는 3%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물론 주주들이 힘을 모아 주주제안권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주요 대기업들은 시가총액이 커 주주들이 모이더라도 이 조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요건을 충족했더라도 또 다른 제한이 길을 막는다. 기후와 관련한 안건은 주주제안 안건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 변호사는 “상법을 보면 주주총회 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주주제안은 회사의 정관 변경이나 임원 선임 등에 한정된다”고 말했다.
형식적 요건을 충족한 주주들은 특별결의 사항 가운데 정관변경, 영업양수도 및 합병, 이사 해임 등과 보통결의 사항 가운데 이사 및 감사의 선임, 이사의 보수, 주식 배당 등에 해당하는 결의안만 제안할 수 있다.
한국ESG기준원(KCGS)의 2022년 2월 KCGS리포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동안 코스피·코스닥·코넥스·기타법인을 포함한 260개 기업에 제안된 주주제안 안건 1608건 가운데 대부분은 임원의 선임이나 해임, 이사 및 감사 선임 안건, 정관 변경이 차지한다.
이를 두고 민 변호사는 “주주들이 환경과 관련해서, 특히 기후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사실 많지 않다”고 했다.
탄소중립 목표 설정 요구,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사업적 요구 등 해외처럼 기후와 연관된 주주제안이 한국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그는 “(기후 관련 주주제안은) 법령상 주주총회 결의만으로는 대상 자체가 안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이라며 “환경 및 기후 전문성을 갖춘 이사 선임을 제안하는 정도만이 주주제안에 포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법상 주주제안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은 만큼 한국에서는 정관 변경을 통해 기후 관련 주주제안이 가능하게 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민 변호사는 “정관을 고쳐서 주주제안을 통해 기후 이슈를 포함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사항을 주주총회에서 논의할 수 있는 권고적 주주제안이 제기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권고적 주주제안은 주주총회 결의를 통과했을 때 곧바로 법적 구속력을 지닌 일반 주주제안과 다르게 권고적 효력만 발생하게 하는 주주제안을 뜻한다.
민 변호사는 기후 관련 주주제안을 고민하는 투자자들에게 기후 스튜어드십 코드의 중요성은 점차 커질 것으로 바라봤다.
민 변호사는 “기존 스튜어드십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투자대상회사 리스크에 관여하는 활동 내지 자율지침이 기후 스튜어드십”이라며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자세한 내용은 13일 오후 2시 전경련회관에서 열리는 2023기후경쟁력포럼 가운데 민 변호사가 맡은 '기후스튜어드십 확장을 위한 법·제도 과제' 발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 법무법인 지평은 무엇? 민창욱 변호사는 누구?
법무법인 지평은 2000년 설립돼 현재 변호사 300여 명에 이르는 종합 법률회사(로펌)로 거의 모든 법률 분야의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지평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기업들이 대처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도 수행하는데 특히 ‘ESG 시대’의 변화도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ESG가 주요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 데다가 환경 이슈 가운데에서도 특히 기후변화 대응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평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주주들의 기후행동 등 법적 쟁점이 포함된 만큼 기후변화와 관련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2020년 8월 설립된 ESG센터를 들 수 있다. 이는 업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ESG 전문 조직이다.
ESG센터는 ESG와 관련한 세계적 흐름을 파악하고 관련 연구 등을 분석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지평은 ESG센터를 중심으로 2021년 ‘주주행동주의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펴내기도 했다.
민창욱 변호사는 2012년 지평에 합류해 컴플라이언스팀장으로 ESG와 인권경영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19년 UC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 석사과정(MPA)을 밟기 시작하며 기업과 인권 등을 공부했고 ESG 전반에 걸쳐 본격적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민 변호사는 AIGCC 후원을 받아 클라이언트어스(Client Earth)가 펴낸 ‘아시아의 탄소중립 관여: 주주 기후 결의안 가이드’에서 한국 파트를 맡아 주주제안 제도의 현황을 분석했다. 주주행동주의와 스튜어드십 코드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다. 장상유 기자
[편집자주] 68조 달러, 우리 돈 9경 원의 자산 보유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후행동 100+’란 이름으로. 캘퍼스, GIC 등 대형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국적도, 규모도 다른 투자자들이 연합해 ‘기후행동’에 나선 이유는 하나다. 기후재앙이 더 커지면 혹은 탄소중립 압박으로 산업 지형이 달라지면 투자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수탁자 활동 즉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이 국내외 대형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강해지고 있다. 올 9월부터는 국민연금도 ‘기후변화 관련 위험 관리’ 차원에서 수탁자 책임 활동 즉 스튜어드십 활동을 시작한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기후 스튜어드십을 선도하는 국내외 리더들을 인터뷰하고 국내 기업 대응 전략을 전한다. 아울러 국회ESG포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공동으로 6월13일 2023기후경쟁력포럼을 개최한다. 관련 기사와 포럼 안내는 홈페이지(ccforum.net)에서 볼 수 있다.
② UNEP FI 에릭 어셔 “기관투자자의 리더십이 중요”
③ AIGCC 배희은 “투자자도 기후변화 피할 수 없다”
④ 법무법인 지평 민창욱 “한국, 기후 관련 주주제안 쉽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