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의 드론(무인기) 공격 여파로 전략비축유까지 시장에 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까?
17일 석유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석유공사가 전략비축유를 시장에 내놓을지 여부는 이번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원유시설의 복구기간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 한국석유공사 직원들이 16일 한국석유공사 울산 본사에서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의 가격 추이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
복구기간이 길수록 글로벌 원유시장의 불안정에 따른 국내 기업의 피해도 커진다. 이를 줄이기 위한 ‘완충역할’로서 한국석유공사가 미리 쌓은 전략비축유를 민간기업에 빌려줄 수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6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확보한 전략비축유 2억 배럴 규모의 절반 정도인 9600만 배럴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업계의 필요 물량을 89일 정도 충족하는 수준이다.
이 전략비축유가 방출되고 민간 정유회사에서 각각 확보한 물량과 기타 수급방안까지 동원하면 국내 기업들이 원유를 6개월 정도는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다고 전망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을 운영하는 아람코는 무인기의 공격으로 가동이 중단된 석유시설의 예상 복구기간 등을 이르면 18일에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석유공사를 감독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아람코의 발표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한국석유공사의 전략비축유를 푸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산업부와 한국석유공사 등 관계기관이 상황에 따라 비축한 원유를 적절한 시기에 방출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한국석유공사 비축사업본부 관계자는 “산업부의 판단에 따라 원유나 제품유를 풀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온다면 우리도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라 적극 협조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한국석유공사에서 전략비축유를 풀어야만 하는 상황이 올지 불확실하다.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는 대부분 장기 계약형태로 들어오는 만큼 수입 차질도 제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자체적으로 비축한 석유 물량을 풀어 다른 나라의 원유 수급에 생길 문제를 최대한 줄일 방침을 세웠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석유공사에서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는 상황은 석유물량 자체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진 때일 것”이라며 “석유시설 복구가 단기간에 이뤄진다면 전략비축유 방출까지 이어지진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에서 전략비축유를 내놓은 일은 30여 년 동안 3차례 발생했다.
1990년 걸프전 때 전략비축유가 풀렸고 2005년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향으로 글로벌 유가가 장기간 급등했을 때와 그 해 혹한기로 ‘등유 파동’이 일어났을 때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이 복구되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만만찮다.
에너지 컨설팅회사인 클리어뷰에너지파트너스의 케빈 북 연구소장은 미국 방송 CNBC에서 “아람코가 피폭 설비의 생산능력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수 주가 걸릴 것”이라며 “설비 가동중단이 3주만 이어지더라도 유가가 배럴당 최대 10달러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을 공격한 배후를 이란으로 지목하면서 중동 정세가 급격하게 불안정해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석유시장의 혼란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한국석유공사의 전략비축유 방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 미국 백악관에서 기자들로부터 이란이 이번 공격의 뒤에 있다는 증거를 봤는지 질문받자 “확실히 알게 되면 알려주겠지만 그건 그렇게 보인다”고 대답했다고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