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에 관여할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중재에 적극 나설지는 불확실하다.
18일 정치권 관계자의 말과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도 직접 개입하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과 일본은 양쪽 모두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다. 그만큼 미국도 두 국가의 이해충돌 사안을 중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미국 기업이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으로 얼마나 피해를 입을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점도 미국의 움직임을 신중하게 만들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 기업이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면 애플 델 휴렛팩커드(HP) 등의 미국 IT기업에게도 장기적 악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 IT기업들도 대체 수입선의 확보 등으로 일정 부분 대처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이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를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부를 통해 한국과 일본에 무역갈등 해법을 제시하거나 공식 회담을 주선하는 등 중재자 역할을 당장 수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대신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물밑대화를 도우면서 무역갈등 상황이 더욱 나빠지지 않도록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행보를 선택할 수 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존 볼턴 보좌관과 매슈 포틴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조만간 한국과 일본을 개별적으로 찾을 수 있다고 미국의소리(VOA) 등이 18일 보도했다.
이들이 한국과 일본 방문을 검토하고 있는 점을 놓고 두 나라의 무역갈등과 관련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7일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이라며 “두 나라의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을 돕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을 적극 중재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며 “갈등이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원론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관여하려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무역갈등을 오랫동안 벌이면서 미국 기업이 눈에 띄는 피해를 입거나 미국의 안보를 흔들 불안요인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라지브 비스워스 IHS마킷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7일 미국 ABC와 인터뷰에서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메모리반도체칩을 공급하는 주요 거점”이라며 “중국과 미국에 생산거점을 갖춘 미국 IT회사들은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짚었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이 두 나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의 파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은 한국과 일본이 군사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협정을 말한다. 1년 단위로 갱신되고 연장을 바라지 않는 쪽은 8월24일까지 의사를 통보해야 한다.
미국 정부 인사들이 최근 미국을 찾은 한국 외교부 대표단에게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으로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은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은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협정인 만큼 8월 중순까지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이 지속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부의 중재를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