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부영그룹 회장은 '기부왕'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만큼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친 이도 드물다.
그러나 이제 '탈세범'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 이 회장으로서는 수치스런 일이다. 평생의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원의 판결이 더욱 주목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이 2월7일 비리혐의로 구속기소되면서 부영그룹은 창립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적용된 혐의만 횡령 및 배임, 탈세, 임대주택법 위반 등 5개가량이다. 더욱이 부영그룹에는 후계구도도 마련돼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법정에서 다투게 된 사안인 만큼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가장 관심을 받는 대목은 임대주택 분양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다. 이 회장이 부영그룹을 키운 기반이 임대주택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0대 후반 전남에서 맨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20대부터 건설사업에 뛰어들었다. 1983년 부영그룹의 기반을 세우고는 임대주택 분야에 집중해 재계 16위로 일궈냈다.
기존 민간기업들이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꺼려온 공공임대사업에 뛰어든 만큼 서민의 주거 안정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품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부영그룹이 분양가를 조작해 부당이득을 챙겨왔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검찰 역시 부영그룹이 임대주택 분양가를 부풀려 얻은 이득이 1조 원이 넘는다고 바라본다.
이 회장에게는 이처럼 상반된 이미지가 많다. 탈세범이라는 오명을 쓸 위기에 몰렸지만 기부왕이라는 별칭도 지니고 있다.
이 회장이 지금까지 부영주택 등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에 쓴 투자액은 5600억 원에 이른다. 2014년에는 부영그룹이 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 매출 대비해 기부금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중퇴한 아쉬움 때문이라며 교육지원사업울 열정적으로 펼쳐왔다.
부영주택은 이 회장의 고향인 전남 순천에 부영초등학교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초중고등학교 95개, 대학교 12개, 기숙사 87개 등을 지어 기부했다. 1994년 말부터는 지방 학교에 '우정학사'라는 기숙사를 지어 기증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 개인 부담으로 역사 시리즈물을 발간하는 데 500억 원이 넘는 돈을 쓰기도 했다. 특히 6·25전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6·25전쟁 1129일’은 요약본만 1천만 부 정도를 제작해 국방부와 대한노인회 등 기관이나 단체에 무료로 배포했다.
이렇다 보니 이 회장이 부정적 이미지를 가리기 위해 기부활동을 벌인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만 보기에는 기부활동이 너무 꾸준하고 폭넓다는 반박도 있다.
경영방식을 놓고 두개의 이미지가 충돌한다. 이 회장은 지주사인 부영 지분을 90% 넘게 소유해 부영그룹 전체의 전권을 쥐고 있는데 자수성가의 신화로도 불리지만 구시대적 황제경영이라는 말도 듣는다.
이 회장은 2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위해 법원에 출석하면서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법을 지켰을 것”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지배구조상 부영그룹은 이 회장의 ‘1인 기업’이나 다름없다. 이 회장이 35년을 공들여 키운 부영그룹 역시 그와 운명을 같이 할 수도 있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부장판사 이순형)는 3월12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으나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아직 사건과 관련된 기록을 다 열람하지 못했다”며 공소사실과 관련된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재판부는 23일 공판준비기일을 다시 연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