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을 놓고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과 주요 외국언론도 반도체 업황의 악화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에 점차 무게를 싣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 실적의 대부분을 책임지던 반도체사업의 전망이 어두워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던 스마트폰과 TV 등 완제품 중심의 성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8일 “삼성전자가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성장세를 보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유력하다”며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정점을 찍고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삼성전자가 전 세계 경쟁사들의 빠른 추격에 직면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에 의존해 지속성장을 추진하는 데 분명한 한계를 보일 것으로 분석했다.
전 세계 반도체기업들의 실적전망치와 주가는 최근 들어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반도체산업에 쏠렸던 투자자들의 높은 기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업황 변동성이 높은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 대부분의 실적을 올리고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반도체산업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삼성전자가 경쟁사들보다 앞선 기술우위를 지키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삼성그룹과 한국경제 전반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기술개발에 앞서나간 성과로 업황이 나빠져도 경쟁사와 비교해 타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것이라는 전망을 받아왔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3D낸드 등 반도체 핵심기술에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과 같은 경쟁기업이 격차를 좁히고 있는데다 대규모 생산투자도 앞두고 있어 상황이 삼성전자에 불리해졌다고 파악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연결기준 전체 영업이익에서 65% 정도를 반도체에 의존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반도체사업의 흐름에 따라 기업가치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 실적이 단기간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낮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다 삼성전자의 시장지배력도 여전히 굳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새 성장동력의 부재로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적 견인차 역할을 맡던 반도체사업의 성장마저 불안해진다면 고민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스마트폰과 TV 등 완제품의 경쟁력 강화와 사업확대에 더 역량을 집중해 반도체 성장둔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삼성전자에서 반도체와 완제품이 주기적으로 번갈아가며 실적성장을 이끌어왔다”며 “반도체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는 지금부터 스마트폰이 삼성전자의 이익상승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 사장(왼쪽)과 고동진 IM부문 사장. |
황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폴더블 스마트폰 출시와 인공지능기술 발전 등으로 고가 스마트폰의 흥행을 노리며 반도체 중심의 실적구조를 다시 바꿔내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내다봤다.
TV와 가전제품 등 최근 부진한 성적을 보이던 사업도 QLEDTV와 사물인터넷 가전 등 차세대 제품의 본격적 라인업 확대로 반등기회를 찾고 있다.
반도체 업황의 전망이 낙관적이지 못한 만큼 삼성전자가 완제품의 경쟁력 확보에 속도를 내기 위해 더 힘을 실어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조직개편으로 완제품 연구소를 소프트웨어센터와 통합해 규모를 키우는 등 변화를 추진한 것도 완제품사업의 입지회복을 노린 선제적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황 연구원은 “삼성전자 기업가치 상승은 이제 반도체보다 스마트폰 등 세트사업의 성장성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부품과 완제품이 공존하는 사업구조가 장점”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