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대표이사와 사업부문장, 이사회 의장을 모두 교체하는 대규모 인적쇄신을 내놓았지만 리더십 공백 위기를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외국언론이 평가했다.
이번 인사가 오너일가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복귀를 준비하는 포석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1일 “삼성전자의 대규모 인사이동이 이뤄진 뒤에도 진짜 리더가 누구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며 “겉을 볼 땐 진보적 변화지만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 등 기존 대표이사가 모두 후임경영진에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이사회 의장은 권 부회장을 뒤이어 이상훈 사장이 맡는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이 처음 분리된 것은 더 현대적 지배구조를 갖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복귀를 위한 변화일 수도 있다고 봤다.
이사회가 온전히 독립적 권한을 갖추지 못하면 삼성전자의 투자와 인수합병, 조직개편 등 중요 결정은 여전히 오너일가인 이 부회장의 의지에 따라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된 것이 사외이사들의 추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동안 사외이사진이 삼성전자 오너일가의 결정에 반대의견을 내놓기 어려운 ‘거수기’ 역할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꾸준히 나왔던 만큼 이런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시각도 있다.
이 사장이 삼성전자의 재무를 총괄하는 ‘재무통’으로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오너일가에 신임을 받아온 최측근으로 꼽혔던 만큼 이번 인사로 오너일가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의 이번 인사는 리더십이 누구에게 있는지 투명하게 보여주지 못했다”며 “여전히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승소해 경영에 복귀하는 결과를 희망하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 부회장이 항소심 판결에서도 실형선고를 받는다면 다른 재벌총수와 같이 수감 중에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옥중경영체제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애플과 인텔 등 글로벌 주요 IT기업은 대부분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권한을 강화해 감시자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조직문화에서 최고 연장자인 이상훈 사장이 김기남 사장과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 등 신임 대표이사들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 에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사장이 오너일가의 입장에서 주요 결정을 내린다면 대표이사들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어 결국 경영체제와 지배구조에 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노무라증권의 분석을 인용해 이번 인사와 역할변화가 삼성전자에 이재용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예정돼있던 것으로 사실상 큰 변화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구속수사와 실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경영과 거리를 두기보다 오히려 삼성전자에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데 더 무게를 싣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 처음으로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새 대표이사들은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구름 뒤 가려진 사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며 경영에서 주도권을 쥐기는 사실상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증권사 번스타인도 경제지 쿼츠를 통해 “이번 인적쇄신은 박근혜 게이트 사건에 휘말린 과거를 청산한다는 의미일 뿐 삼성전자의 경영구조나 전략 등에 큰 변화가 아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국 재벌기업의 뿌리깊은 문화가 삼성전자에서 단기간에 사라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 셈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글로벌 스탠다드’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꾸준히 강조해 왔다. 이재용 부회장 시대를 맞아 본격적으로 오너일가 대신 전문경영인의 권한과 역할이 크게 강화되는 변화가 예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에서 이른 시일 안에 이런 대대적 쇄신을 확인하기는 당분간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권 부회장은 대표이사 사퇴의 이유로 조직쇄신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삼성전자의 이번 인사에서 이런 노력을 찾기는 어렵다는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