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신입사원이 도맡던 자료 조사나 데이터 정리, 문서 작성, 기초 코딩 같은 초급 업무를 생성형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더 이상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신입을 육성하기보다,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한다.
실제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난 4년간 청년층(15~29세)의 일자리가 28만 5천 개 감소하는 동안 50대의 일자리는 23만 개 늘었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청년 일자리 감소분의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 ▲ 이현승 커리엉케어 씨드림본부장. <커리어케어> |
단순한 전공 지식이나 자격증만으로는 경쟁력을 증명하기 어려운 시대다. 구직자와 이직자는 이제 단순한 스펙 쌓기를 넘어, 실제 밀도 있는 실무를 경험하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성장 생태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 팬데믹 특수의 종말, 성장 산업군에 주목해야
취업과 이직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회사의 지명도가 아니라 ‘산업의 성장성’이다. 아무리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라도 속한 산업이 정체되거나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면, 신규 인력에게 의미있는 역할을 부여하거나 성장을 지원할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팬데믹 기간 호황을 누렸던 제약과 바이오, 비대면 플랫폼, 이커머스 업계가 대표적이다. 당시 공격적으로 몸집을 불렸던 기업 중 상당수가 엔데믹 이후 사업과 인력을 대대적으로 재편했다. 특정 시기의 반사이익으로 이름값은 높아졌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유지하지 못한 탓이다.
한국 최대 헤드헌팅회사 커리어케어의 씨드림(C·Dream)에 커리어 전략 자문을 신청하는 이들 중에서도 이러한 업황 침체와 구조조정 여파로 커리어 궤도 수정을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씨드림의 컨설턴트들은 커리어 자문 신청자들의 기존 성과와 역량을 면밀히 진단한 뒤 성장이 이어지는 산업군으로 최적의 이동경로를 함께 설계한다.
최근에는 반도체 분야로 진입을 희망하는 지원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하지만 단순히 반도체 호황만 보고 무작정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완제품 대기업에 도전해서는 승산이 높지 않다. 지원자가 대거 몰리는 탓에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시야를 넓혀 글로벌 칩메이커에 핵심 소재나 부품, 장비를 공급하는 탄탄한 중견기업이나 강소기업으로 눈을 돌려보라고 조언한다.
◆ ‘천안 클러스터’와 반도체 소부장이 던지는 시사점
대표적인 사례가 충남 천안·아산 일대에 포진한 반도체 후공정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이다. 반도체 후공정 특화단지인 ‘천안 클러스터’에는 패키징과 테스트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개발(R&D)과 실증, 양산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다.
물론 이곳의 모든 기업이 화려한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니다. 대기업에 비해 연봉이 낮을 수 있고, 체계적인 사내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첨단 공정 투자가 집중되는 성장 현장에서는 신입이라도 주요 프로젝트에 깊숙이 참여하며 직무 경험을 빠르게 축적할 수 있다.
이러한 기회가 이공계 엔지니어에게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제조 생태계가 확장되면 구매나 품질관리(QC), 재무·원가분석, 해외영업, 국책과제 관리 같은 사업 전반의 지원부서 역량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자신의 전공과 경험이 산업 밸류체인의 어느 접점에 맞닿아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취업 전략의 핵심이다.
◆ 경력 사다리의 재구성: 출발점이 곧 종착점은 아니다
중소중견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면 이후 대기업이나 상위 기업으로 도약하기 어려울 것이라 지레 짐작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기업의 규모만 으로 인재의 가치를 평가하던 시대는 끝났다.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대기업만을 유일한 출발점으로 고집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첫 직장은 커리어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다. AI가 기초 업무를 대신하는 환경일수록, ‘어느 브랜드의 명함을 가졌는가’보다 ‘성장하는 현장에서 어떤 실무 문제를 해결해 보았는가’가 직업적 수명과 시장 가치를 결정한다.
과거의 영예나 회사의 이름값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자본과 기술 투자가 실제로 유입되는 산업의 생태계를 먼저 읽어야 한다. 살아 움직이는 시장 속에서 대체 불가능한 실무 역량을 다지는 것, 이것이 바로 AI시대에 무너진 경력 사다리를 다시 세우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다. 이현승/커리어케어 씨드림 본부장,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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