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식품 오너 일가는 지주회사 체제 도입 이후 10년 동안 지주회사 샘표 지분 확보에 집중하며 그룹 지배력을 다져왔다. 그런데 샘표가 해체 수순을 밟게 되면서 오너 일가의 사업회사 지배 지분 축소로 이어지게 됐다.
| ▲ 박진선 샘표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장남 박용학 샘표식품 전무가 지주회사 체제 해체로 사업회사 지배 지분이 줄어드는 변화를 맞게 됐다. <샘표> |
3일 샘표식품 안팎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샘표가 지주회사 유지에 필요한 자산총액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배경에는 지난 10년 동안 충분한 규모의 자산 성장을 이루지 못한 점이 자리하고 있다.
샘표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자산총액 기준인 5천억 원에 미달해 2027년 6월30일 유예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다. 유예기간이 끝날 때까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주회사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문제는 2017년 자산총액 기준이 기존 1천억 원에서 5천억 원으로 높아진 이후에도 샘표의 자산 증가 속도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샘표의 별도재무제표상 자산총계는 2017년 말 약 1491억 원에서 2020년 말 1855억 원, 2023년 말 2032억 원, 지난해 말 2217억 원으로 늘었다.
2017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8년 동안 증가한 자산은 약 726억 원에 그쳤다. 연평균 증가율은 약 5.1% 수준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자산총계도 약 2255억 원으로 지주회사 유지 기준인 5천억 원의 45% 수준에 불과하다. 유예기간 종료를 1년가량 앞둔 시점에도 필요한 자산의 절반 이상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샘표그룹 전체의 자산 규모와 비교하면 이러한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샘표의 지난해 연결기준 자산총계는 약 4901억 원으로 5천억 원에 근접했다. 그러나 지주회사 샘표 자체의 별도 자산총계는 2217억 원에 머물렀다.
이는 샘표그룹의 주력 사업을 담당하는 샘표식품에 제조시설과 영업자산 등이 집중돼 있는 반면 지주회사 샘표는 주로 계열사 지분과 상표권 등을 보유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샘표그룹은 사업회사를 중심으로 외형을 키워 왔지만 지주회사 자체의 자산 규모를 5천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지난 10년 동안 오너 일가의 지배기반을 다지는 데 활용한 지주회사 체제를 유지할 만큼 자산을 키우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여기에 2027년부터 적용되는 새 회계기준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분법이익 등이 별도재무제표상 매출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기존 방식으로 상장 유지에 필요한 매출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샘표식품은 10월30일 지주회사 샘표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합병 예정기일은 2027년 2월1일이다. 샘표로서는 자산총액을 늘려 지주회사 지위를 유지하거나 별도 법인으로 존속하는 방안 대신 사업회사와 합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기존에는 지주회사 샘표가 보유한 샘표식품 지분 49.40%와 오너 일가 등 특수관계인의 직접 보유 지분을 통해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합병 이후에는 지주회사가 사라지면서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이 샘표식품 지분을 직접 보유하게 된다. 지주회사를 거쳐 사업회사를 지배하던 방식이 사업회사 직접 지배체제로 바뀌는 것이다.
합병과 자기주식 소각이 모두 완료되면 샘표식품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기존 59.71%에서 51.84%로 7.87%포인트 낮아진다.
박 사장과 박 전무 부자만 놓고보면 지분 변화는 더욱 커진다.
현재 박 사장은 지주회사 샘표 지분 48.58%, 박 전무는 9.39%를 보유하고 있다. 부자 합산 지분은 57.97%로 지주회사 지분의 과반을 차지한다. 그러나 합병 이후에는 박 사장이 샘표식품 지분 31.51%, 박 전무가 6.08%를 직접 보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자 합산 지분은 37.59%다.
| ▲ 샘표식품이 2027년 2월1일 지주회사 샘표를 흡수합병하게 되면 2016년 이후 유지해 온 지주회사 체제가 끝난다. 사진은 서울 중구 샘표 본사 사옥. <샘표> |
샘표식품이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한 것은 2016년이다.
당시 샘표식품은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샘표와 사업회사 샘표식품으로 나뉘었다. 기존 회사는 샘표로 이름을 바꾸고 지주회사 역할을 맡았다.
새로 설립된 샘표식품은 장류와 소스 등 식품사업을 담당하게 됐다.
이후 샘표는 현물출자 유상증자 등을 거치면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집중되는 구조로 재편됐다.
2017년에는 박 사장과 박 전무가 보유한 샘표식품 주식을 지주회사 샘표에 현물출자하고 그 대가로 샘표 신주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 사장의 샘표 지분율은 16.46%에서 34.05%로, 박 전무의 지분율은 2.36%에서 4.83%로 높아졌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 지분으로 바꾸면서 지주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 것이다.
박 전무는 이후에도 샘표 주식을 추가로 취득하며 지분을 확대했다. 샘표그룹이 지주회사 중심의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과정은 박 전무의 장기적 경영권 승계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샘표가 올해 9월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 86만332주를 소각하면서 박 사장과 박 전무의 샘표 발행주식 기준 지분율은 각각 48.58%, 9.39%로 높아졌다. 두 사람이 보유한 주식 수는 변하지 않았지만 발행주식 총수가 감소하면서 지분율이 상승했다. 전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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