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역균형발전과 생산적금융을 강조하며 지방은행의 지역경제 역할 확대에 힘을 싣고 있는 만큼 지자체 금고 경쟁에서 지역 자금 선순환과 지역경제 기여도를 앞세운 지방은행의 경쟁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나온다.
|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왼쪽 5번째)이 지자체 금고 입찰에서 공정한 경쟁을 당부했다. 사진은 23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은행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금융감독원> |
23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지주회장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지자체 금고 입찰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자본력의 우위가 있는 은행이 협력사업비 경쟁을 통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는 모습은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경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 금고 운영을 이해타산의 관점으로만 접근하기보다는 ‘지역 내 자금 순환’과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도 함께 고려하길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말 다수 지자체의 금고 운영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지방은행과 농협은행, 시중은행 사이 금고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들어 지방은행들은 자본력과 전국 영업망에서 우위에 있는 대형은행과 경쟁하기 위해 지역경제 기여도를 금고 선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방은행에 지자체 금고는 단순한 지방정부 자금 관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액의 지자체 자금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데다 공무원과 지역기업, 주민 등으로 고객 기반을 확대할 수 있어 지역 내 영업기반과 수익성 확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방은행이 거점을 둔 지역에서는 해당 지방은행이 지자체 금고에서 우위를 점하는 구도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최근 대형 시중은행도 지방 금고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시중은행인 KB국민은행이 경상북도 금고 입찰에 뛰어들어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경상북도금고는 농협은행이 1금고, iM뱅크(옛 대구은행)가 2금고를 맡아왔다.
결과적으로 KB국민은행이 최종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시중은행이 지방은행 거점지역 금고 공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됐다.
인천은 거점을 둔 지방은행이 없어 최근 완료된 시금고 선정 과정에서 지방은행과 시중은행 사이 경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시중은행 사이에서도 협력사업비, 금리 등을 둘러싼 과열경쟁 우려가 제기됐다.
협력사업비는 은행이 지역사업 지원 등을 위해 지자체에 출연하는 자금으로 지자체 금고 선정 과정에서 은행의 주요 경쟁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여러 지자체 가운데 특히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금고지기 선정은 지방은행의 지역기여 논리가 실제 금고 경쟁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볼 핵심 사례로 꼽힌다.
| ▲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17일 금고 지정 신청 공고를 내고 시금고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청 광주청사 전경. <연합뉴스> |
올해 7월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가 통합 출범하며 만들어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금고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1금고는 농협은행, 2금고는 광주은행이 맡고 있다. 통합 전에는 전라남도 1금고를 농협은행이, 광주광역시 1금고를 광주은행이 각각 맡아왔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17일 금고 지정 신청 공고를 내고 2027~2030년 동안 금고를 맡을 금융기관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연간 예산과 행정통합재정지원금을 더하면 금고에서 관리하는 재정 규모는 25조 원 안팎이다. 서울과 경기에 이어 전국 3위 수준이다.
앞서 7월 광주은행·전북은행·부산은행·경남은행·제주은행·iM뱅크 등 지방은행 6곳은 행정안전부에 지자체 금고 선정기준 개선을 공동 건의했다.
지방은행들은 농협은행과 별도 법인인 지역농협의 점포와 실적을 금고 운영기관 선정 시 농협은행 평가에 반영하는 문제 등을 지적하고 지역경제 기여도 등 지방은행의 강점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선정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시 김종훈 광주은행 부행장은 공동건의를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공정하고 합리적 금고선정 기준이 마련될 수 있도록 6개 지방은행이 한목소리를 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전남광주통합시의회가 금융기관 영업망을 단순 점포 수가 아닌 시·군·구별 분포까지 평가하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광주은행에는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지역농협 점포를 농협은행 영업망 평가에 포함할지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도 지자체 금고 유치전이 자본력과 협력사업비 중심의 과당경쟁으로 흐르는 데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지방은행들이 금고 경쟁을 두고 제기해 온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을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언급한 만큼 향후 금고 경쟁구도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지자체 협력사업비 지출이 건전성과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을 밝혔다.
이날 은행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이 진행하는 지자체 대상 협력사업비 지출이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분석하고 결정된 내용인지 금융감독원 차원에서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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