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승구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15일 경남 사천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화그룹의 KAI 경영참여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
다만 KAI 직원들은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직계열화를 통한 대형화’는 필수라는 한화그룹의 명분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기관이 최대주주인 현 소유구조가 항공·우주 분야 기업의 장기 성장에 적합하며, 한화그룹의 KAI 인수는 다양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내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김승구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갑작스러운 지배구조 변화가 회사 근로자의 고용 불안정을 유발하고, 지역경제 쇠퇴를 촉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화그룹이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을 인수하는 과정과 인수 이후 직원 고용과 관련한 행보를 보면 매끄럽지 못한 것이 부지기수”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부당노동행위 판결, 한화오션 노동조합 대의원 선거 개입 의혹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위성), 발사체(순천), 연구개발(판교·창원) 등 전국 각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업장으로 KAI의 우주 관련 사업 인력이 흩어지면, 기존 사천 우주센터는 생산기지 역할만 수행하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며 “KAI를 보고 사천에 본청을 둔 우주항공청도 사천에 머무를 이유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사천 일대에 한화의 KAI 경영 참여를 반대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상황의 심각성을 지역사회에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경영 참여 명분으로 내세운 글로벌 방산업계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대형화' 추세에 대해 김 위원장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각자 해온 전문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방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진정한 대형화”라며 “항공기 기체 제작 기업(KAI)과 엔진을 제작하는 기업(한화)이 합치는 수직계열화가 대형화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 ▲ 김승구 KAI 노조위원장이 지난 9월2일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한화그룹과 KAI의 기업결합 심사 승인을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조합> |
그는 "한화그룹이 2040년 항공엔진을 개발한다 한들 안전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엔진 수출이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또 프랑스·스웨덴 등의 전투기 제조사가 경쟁 기종인 KF-21(KAI 제작)이 사용하는 엔진을 굳이 채택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KAI 지분 투자를 계기로 우주항공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한화그룹 계획에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는 "한화그룹은 지난 2016~2018년 보유 중이던 KAI 지분 10%를 '돈이 안 된다'며 매각했는데, 이제야 돈이 될 것 같고 KAI의 수출 사업도 커지니 다시 지분을 사모으고 있다“며 ”항공우주 분야 투자의 진정성을 입증하려면 애당초 지분을 팔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항공기 감항인증 기준 연구', '공군 훈련기 납품', '닥터헬기 생산' 등 공익적 성격의 사업을 수행해 온 KAI의 역할을 언급하며, 단기 수익성을 고려한 행보를 보인 한화그룹 지배 아래서는 이런 역할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화그룹이 KAI의 경영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가진다면 최적의 항공기 부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독립성·자율성을 해칠 뿐 아니라, 국내 방산 생태계의 기술경쟁 자체를 쇠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항공 전자 장비 분야는 그동안 한화시스템과 LIGD&A의 경쟁구도로 기술력이 발전해왔는데, KAI가 한화그룹에 편입된다면 한화시스템 제품만이 채택돼 LIGD&A가 고사할 것이 뻔하다"며 "대형화라는 구호에 현혹돼 잘못된 선택을 내리면, 항공우주 산업이 한순간에 몰락하고, 정부는 한화그룹에 끌려다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KAI 노조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최근 한화그룹의 KAI 지분 보유 승인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했지만, 원론적 답변만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 회사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 역시 최근 항공산업 연구용역 발주와 관련한 노조의 우려 섞인 질의에 역시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 ▲ 사천시 곳곳에 붙어 있는 한화시스템 우주사업부의 경력직 채용 광고물. (왼쪽부터) 사천공항 주차장 승합차에 붙은 채용 광고문, 사천 시내버스에 부착된 채용 광고, KAI 본사 앞에 걸린 채용 현수막 모습.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조합 제공> |
그는 "시내 곳곳에 현수막뿐만 아니라 사천공항 주차장에 광고 스티커를 부착한 승합차들이 즐비하고, 사천·진주시 시내버스에도 한화그룹 채용 광고가 진행 중“이라며 ”이 정도까지 노골적으로 KAI 인력을 빼갈 줄은 몰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2026년 12월 위원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재출마 여지’를 남겼다.
지난 3월 대표이사로 선임된 김종출 KAI 사장에 대한 중간평가를 묻자 그는 “노조위원장으로서 CEO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줘도 문제, 박하게 줘도 문제”라며 “당초 예상보다 회사 사정에 능통한 모습을 보이면서,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국책사업 수주나 완제기 해외 수출계약이 이뤄져야 KAI가 발전하는 것”이라며 “정부로부터 회사 사장으로 발탁된 이유를 스스로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화그룹과 관계에서도 김 사장이 적극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방산기업 근로자는 노동조합법 제41조 제2항에 따라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이 제약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지만 5년이 넘도록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전쟁 때는 안 되겠지만 평시만이라도 방산기업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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