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영진 HMM 베트남 하노이지사장이 지난 4일 하노이지사 회사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 |
[베트남 하노이= 비즈니스포스트] 미·중 무역갈등 여파로 동남아시아가 글로벌 공급망의 주요 축으로 발돋움하며, 과거 중국 거대 해운 시장의 보조 역할에 머물렀던 동남아 해운 시장의 위상도 판이하게 달라졌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과 인접한 베트남 북부 지역에 생산기지를 대거 조성하면서, 이 지역의 수출입 관문인 하이퐁항의 물동량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해운 선사들도 이같은 베트남 해운 시장 성장 잠재력에 주목하고 하이퐁을 경유하는 미주·유럽행 장거리 직항 노선을 신설하는가 하면, 하이퐁 신규 항만 터미널 지분을 확보하는 등 앞다퉈 베트남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유일한 원양컨테이너선사 HMM 역시 하이퐁 노선을 늘리고, 현지 물류 특성을 겨냥한 신사업 진출을 적극 타진하고 있다.
지난 4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한인타운 미딩에 위치한 HMM 하노이지사를 찾았다.
HMM은 옛 현대상선 시절인 1992년 호치민 대리점으로 베트남 해운 시장에 첫발을 뗐다. 이어 2007년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2012년 독립법인 전환을 거쳐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하노이에는 2013년 첫 대리점이 문을 열었고, 2020년 지사로 승격되면서 본격적으로 본사 주재원이 파견되기 시작했다.
현재 하노이지사는 2023년 취임한 안영진 지사장과 현지 직원 10명이 화주 영업과 신규 서비스 개발, 대외 네트워크 관리를 맡고 있다.
안 지사장은 “과거 동남아 해운 시장은 중국발 해운 물동량이 약세일 때, 모자란 화물을 백업해 주는 시장으로 인식됐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과 어깨를 견줄 만한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 갈등으로 중국 제조업 생산기지가 베트남으로 대거 이동한 데 따른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실제 베트남해양청에 따르면 2025년 베트남 항만 컨테이너 처리량은 3436만TEU로 10년 전인 2015년 1122만TEU와 비교해 206.8% 증가했다.
특히 삼성과 LG 등 국내 대표 IT·가전 기업은 물론 애플의 핵심 생산 파트너인 대만 폭스콘, 베트남 완성차 업체 빈페스트 등이 베트남 북부 경제벨트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만들면서, 이 지역의 수출입 관문인 하이퐁항의 물동량이 급증하고 있다.
하이퐁항만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2025년 825만TEU(대각선 길이 20피트 규격의 컨테이너)를 기록했다. 이는 2024년보다 15.5% 증가한 수치이며, 10년 전인 2015년의 102만TEU보다는 8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HMM 역시 현재 하이퐁에서 미주 서안으로 향하는 직기항 노선 3개를 가동 중이다. 또 하이퐁에서 선적 후 싱가포르나 중국 쉐코우에서 환적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화물이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하노이지사는 HMM의 베트남 전체 물동량의 30% 가량을 처리한다. 60~70%를 처리하는 호치민 법인에 비하면 규모는 적지만 물동량이 늘어나는 속도는 훨씬 가파르다는 게 안 지사장의 설명이다.
안 지사장은 “일주일에 하이퐁항에서 수출 컨테이너 1400~1500TEU(20피트 컨테이너 단위)를 처리하는데, 이는 하이퐁 전체 물량의 4% 수준이지만 현장에서는 체감하는 처리 규모는 상당하다”며 “미국의 대중 무역 제재가 강해질수록 중국 내 생산설비의 베트남 이전이 가속화될 테니, 하이퐁 물동량도 계속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퐁항에서 처리하는 화물 상당수는 한국 기업을 포함한 글로벌 제조 기업의 베트남 생산 제품을 세계로 수출하기 위한 것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 ▲ HMM의 아쿠아마린호가 베트남 하이퐁 외곽의 락후옌 항만 터미널에 접안하고 있다. < HMM > |
HMM 하노이지사는 최근 ‘공 컨테이너(MTY, 화물을 싣지 않은 빈 컨테이너)’를 활용한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이퐁항에서는 늘 빈 컨테이너가 부족해 화주들이 애를 먹는다. HMM은 이 고충을 해결할 열쇠로 중국 남부에서 베트남 북부로 이동하는 육상 물류 흐름에 주목했다.
우선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수출을 대행해주는 업체와 연계해 중국 남부 항만에서 확보한 공 컨테이너에 베트남에 운송할 중간재·부품을 싣는다.
트럭에 실린 컨테이너는 중국-베트남 국경을 넘어 베트남 북부 주요 제조업단지에 중간재·부품을 내린 뒤, 그곳에서 생산된 수출용 완제품을 싣고 다시 하이퐁항을 통해 해상 운송된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르는 동안 컨테이너 임대 수입을 추가로 확보하고, 베트남 내 화주에 필요한 컨테이너도 확보하는 '꿩 먹고 알 먹고' 방식의 신사업인 셈이다.
안 지사장은 “올해 말 시범 사업 착수를 목표로 협력 업체와 협의 중”이라며 “화주들에게 물류비 절감의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선사들의 하이퐁항 물동량 확보전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안 지사장은 "HMM의 경쟁력은 화주와 한 약속을 끝까지 책임지고 이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포워딩(해상운송 주선) 업체 근무 시절 외국계 선사와 현지 협의를 마쳐도 본사 정책 변화를 핑계로 계약이 허무하게 무산되는 경우를 수없이 봤다”며 “반면 한국 선사들은 현장에서 약속한 조건을 어떻게든 준수하려 하고, 설사 벽에 부딪혀도 합리적 선에서 끝까지 운송을 책임지는 강한 책임감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도움말= 재단법인 바다의품, 한국해양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