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GRS의 함박스테이크 전문점 ‘두투머스함박’과 커피 프랜차이즈 ‘엔제리너스’가 구로디지털단지역 6번 출구 앞에 나란히 입점해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유동인구가 많아 제대로 된 식당이 들어오면 잘 될 것 같다.”
서울 구로동에 거주하는 29세 남성 강모씨는 구로디지털단지역 주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20일 방문한 서울 지하철 구로디지털단지역 6번 출구 앞은 가히 ‘롯데GRS 타운’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였다. 약 50m 거리에 롯데GRS가 운영하는 브랜드 매장 5곳이 자리잡고 있다.
역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일본식 라멘 전문점 ‘무쿄쿠’와 ‘크리스피크림도넛’, ‘롯데리아’, 함박스테이크 전문점 ‘두투머스함박’, ‘엔제리너스’ 등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롯데GRS가 운영하는 브랜드들이 이곳에 매장을 낸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었지만 아는 사람 반, 모르는 사람 반이었다.
인근 회사에서 일하고 은평구 녹번동에 거주한다는 33살 여성 유모씨는 “위치가 어디냐”고 반문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60대 남성 김모씨도 “몰랐다”고 말했다.
역 근처에 1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36세 여성 주모씨는 “알고 있다”며 “젊은 층이 많아서 공략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독산동에 거주하고 구로디지털단지 안의 기업에 근무하는 35세 남성 김동준씨는 “알고 있지만 회사와 거리가 멀어서 잘 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롯데GRS가 이 지역에 거는 기대는 적지 않아 보인다.
차우철 롯데GRS 대표이사는 9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무쿄쿠 구로디지털역점의 개점 소식을 알리며 이곳을 ‘롯데GRS 타운’이라고 언급했다.
▲ 구로디지털단지역 6번 출구 앞에 위치한 라멘 전문점 '무쿄쿠'와 크리스피크림도넛, 롯데리아 매장 외관. <비즈니스포스트> |
브랜드 5개의 매장은 모두 2024년 이후로 열거나 새롭게 단장한 곳이다. 롯데리아가 2024년 2월 재단장하면서 같은 매장 안에 크리스피크림도넛이 들어섰다.
엔제리너스 매장도 올해 1월 새로 단장했는데 공간을 쪼개 옆 매장에는 두투머스함박을 들였다. 4월28일에는 무쿄쿠 매장이 새로 생겼다.
두투머스함박과 무쿄쿠는 사실상 제대로 된 상권에서 처음 매장을 냈다. 두투머스함박은 롯데GRS 신사옥 지하의 테스트 매장을 거친 후 구로디지털역점으로 첫선을 보였다. 무쿄쿠는 일본 도쿄에 본점을 둔 라멘 전문점인데 롯데GRS가 들여와 인천국제공항에서 운영하다가 구로디지털역에 첫 가두점을 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일대가 롯데GRS의 새 브랜드 시험대가 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차 대표가 롯데GRS에서 보이는 행보는 이례적이다.
롯데GRS 본사는 2024년 초까지만 해도 서울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과 독산역 사이에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서울 송파구 잠실 삼전역으로 이전했다.
신사옥 인근에도 이른바 ‘송리단길’이라고 하는 번화가가 있지만 이보다 한참 떨어진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새 매장을 시험하는 지역으로 선택한 것은 다소 특이하다.
롯데GRS가 새 매장 출점의 최우선 전략 지역으로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점찍은 배경은 무엇일까?
유동인구와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 부족한 식당 수, 높은 2040세대 비율 등이 거론된다.
김동준씨는 “구로디지털단지에 입점해 있는 기업들이 많고 단지가 크다는 점이 상권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60대 공인중개사 남성 김모씨도 “길에 나가기만 해도 유동인구 많다는 것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서울교통공사가 발표한 승하차 순위에 따르면 구로디지털단지역은 2024년 서울 지하철역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유동인구를 기록했다. 일평균 승하차 인원이 10만 명을 넘었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연합뉴스> |
대부분 인근 기업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으로 추정된다. 구로구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구로디지털단지에는 기업 3100여 곳이 입주했다.
시민들은 구로디지털단지역을 교통이 좋은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금천구 시흥동에 거주하는 52세 여성 권현주씨는 “구로디지털단지역은 교통이 편해서 좋다”며 “영등포와 여의도 다 접근하기 편해서 모이기가 좋다”고 말했다.
근처에 거주한다는 29세 남성 이모씨 역시 “구로구와 관악구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이 가장 교통의 요충지”라며 “접근성이 좋다”고 덧붙였다.
유동인구가 많지만 임대료가 비교적 낮다는 것도 이 상권의 특징으로 꼽힌다.
서울시의 2023년 상가임대차 실태조사 결과 유동인구 상위 10위권 지하철역 가운데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상권의 통상임대료가 두 번째로 저렴했다. 통상임대료란 보증금과 월세, 공용관리비를 모두 반영한 임대료다.
유동인구 10위 안에 들어가는 지하철역 가운데 인근 상권의 통상임대료가 가장 저렴한 곳은 잠실역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역과 잠실역은 유동인구와 임대료 등 조건이 비슷하다.
그럼에도 차 대표가 구로디지털단지역에 주목하는 이유는 외식업 점포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기준 잠실역 인근의 외식업 점포수는 2751개로 구로디지털단지역(817개)의 3배가 넘는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주변의 시민들은 방문할 만한 음식점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위치한 음식 거리인 ‘깔깔거리’ 입구. <비즈니스포스트> |
주모씨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는 ‘깔깔거리’라고 하는 음식 거리가 있어 음주문화가 발달했지만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갈 곳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역 근처에서 평생 거주했다는 고건씨는 “밥집보다는 술집이 많아 식사를 하러 방문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초·중·고 동창이라는 인근 주민 23살 남성 곽민재씨와 남경민씨도 “근처에 술집이 많다”며 “친구들과 낮에는 근처에서 만나지 않고 술 마실 때만 근처에서 모인다”고 말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은 2040세대 비율이 높은 상권이다.
롯데GRS 관계자는 “핵심 타깃 세대인 2040세대 소비자의 반응을 테스트해 브랜드의 가능성을 검토하기에 구로디지털단지역이 가장 적합한 상권이라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은 구로구 구로3동과 영등포구 대림2동, 관악구 조원동 등 세 곳이 둘러싸고 있다. 서울시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기준 해당 지역에 등록된 20~49세 인구는 전체 인구의 51.2%로 나타났다. 서울시 전체 평균은 44.8%였다. 특히 20~39세 비율은 37%로 서울시 평균인 30.1%와 차이가 컸다.
역 근처에서 근무하고 1년 넘게 거주했다는 28세 남성 윤규식씨는 “주로 30대 초 직장인들이 동네에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롯데GRS의 새 매장 실험을 놓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거주자인 이모씨는 구로디지털단지역을 놓고 “이마트와 다이소, 각종 프랜차이즈 등 인프라가 좋고 역까지 접근하기 쉬운 것이 장점”이라면서도 “주변 환경이 쾌적하지 못하고 시민의식이 좋지 않은 것은 단점”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김모씨는 “구로디지털단지역이 유동인구는 많지만 식당이 잘 되지 않는 상권”이라며 “롯데GRS가 이곳에 음식점을 여는 이유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롯데GRS 관계자는 “신규 매장 위치는 철저한 시장 조사를 기반으로 고객의 수요와 지역 특성 등을 분석해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