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유 기자 jsyblack@businesspost.co.kr2025-03-31 14: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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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건설이 에너지 사업에서 혁신 DNA를 심는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혁신 DNA’를 에너지 사업으로 옮겨 온다.
이 대표가 원자력 발전 중심의 에너지 가치사슬을 구축해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면서 현대건설 역대 최고 수준인 '영업이익률 8%’ 목표 달성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31일 현대건설에 따르면 이 대표는 5년 뒤 별도기준 전체 매출의 5분의 1 이상을 에너지 분야에서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수치로는 2030년까지 전체 매출 25조 원의 21%에 이르는 5조1천억 원 이상이다.
올해 에너지 분야 매출 목표가 전체 매출의 3% 수준, 4700억 원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5년 만에 10배 이상 늘리겠다는 공격적 목표인 셈이다.
▲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가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2025 현대건설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에너지 중심의 미래 성장전략 ‘H-Road’를 발표하고 있다. <현대건설>
이 대표는 지난 28일 현대건설 창립 최초이자 상장 건설사로서 처음으로 개최한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에너지 전환(에너지 트랜지션 리더), 글로벌 시장 지배력 확대(글로벌 키 플레이어), 핵심 상품 및 본원적 경쟁력 고도화(코어 컴피턴시 포커스) 등 3가지 성장전략을 'H-로드'라는 이름으로 제시하면서 에너지를 첫머리에 올렸다.
이 대표는 “H-로드를 성공적으로 실행해 연간 수주 규모를 현재(2025년 기준) 17조5천억 원에서 2030년 25조 원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특히 에너지 분야 매출 비중을 21%까지 늘리겠다”고 내세웠다.
이번 행사에서 현대건설을 총괄하는 이 대표, 곳간을 책임지는 김도형 재경본부장(CFO·최고재무책임자) 전무와 함께 최영 뉴에너지사업부장 전무가 발표자로 나선 점에서도 현대건설의 에너지 사업 확장을 위한 의지가 읽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가 강조한 현대건설 에너지 사업전략의 핵심은 시장 확대를 선점하기 위해 ‘혁신을 주도’하는 퍼스트무버로 나아가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현대건설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 규모가 2021년 2만6700TWh(테라와트시)에서 30년 뒤에는 최대 6만6천TWh까지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지금이 에너지 사업 선도를 위한 적기라고 분석했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동시에 에너지 안보 및 공급 안정성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각광받고 있는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핵심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현대건설은 대형원전, 소형모듈원전(SMR), 수소 생산플랜트 분야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새로운 패키지 상품을 제안하는 등 생산-저장·운송·활용을 아우르는 에너지 산업 전반의 가치사슬(밸류체인)을 구축해 선제적 혁신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이 대표는 풍부한 시공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원자력 사업을 에너지 혁신을 주도할 중심으로 삼았다.
현대건설은 한국 최초의 원전인 1971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최초의 국내 주도형 원전인 한빛 3~6호기, 한국 최초의 가압중수로형 원전인 월성 원전 1·2호기, 처음으로 시공된 한국형 원전(ARP140)인 새울 원전 1·2호기를 시공했다. 또 신한울 원전 1~4호기를 통해 시공주간사로 국내 대형원전 시공 20호기를 달성했다.
또 원전 10기를 동시 시공한 경험, 국내 최초 해외 수출 원전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4호기의 시공 주간사 참여, 유럽 최초 대형 원전(AP1000) 진출인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7·8호기 추진까지 대형원전 역량을 쌓고 SMR, 원전 해체와 리모델링 분야 선점에 나섰다.
현대건설은 당장 올해부터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7·8호기 본계약(EPC) 체결과 국내 건설사 최초로 상용화 설계에 성공한 미국 SMR 착공을 계획하고 있다.
미래를 바라보고 한국원자력연구원과 4세대 SMR로 주목받는 용융염원자로(MSR)와 소듐냉각고속로(SFR)를 비롯해 원자력 수소생산, 원전해체 분야 공동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 대표가 첫 CEO 인베스터데이를 통해 내놓은 에너지 분야 선도 전략은 정의선 회장이 강조해 온 그룹의 지향점을 건설 계열사로도 옮겨온다는 의미도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현대차와 기아를 앞세운 현대차그룹의 성공에는 올해로 취임 만 5년 차에 접어든 정 회장의 ‘퍼스트무버’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많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완성차 723만 대를 판매해 점유율 3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시장에서 정 회장이 취임한 2020년 4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점유율 5위권에 머물렀지만 2022년 3위에 오른 뒤 3년 연속으로 자리를 지켰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월6일 경기 고양시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2025년 신년회'에서 그룹 임직원들에게 새해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전기차 개화기에 맞춰 전용전기차 플랫폼 ‘E-GMP’ 개발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한 점, 수소차 분야 기술력에서도 앞서가는 점 등은 정 회장의 성과로 꼽힌다.
정 회장은 2020년 10월 현대차그룹 회장 취임사에서 ‘안 되면 되게 만드는 창의적 그룹 정신’, ‘개척자’ 등을 그룹의 핵심 가치로 꼽았다. 올해 1월 신년 메시지 공유 자리에서도 “지속적으로 체질을 바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온 우리는 어떤 시험과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현대차그룹 DNA를 갖고 있다”며 강조했다.
이 대표가 에너지 분야 주도권을 내세운 것은 성장 한계에 부닥친 건설산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 안정적 수익성을 챙기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국내 대형건설사들의 주력인 주택사업은 과거처럼 눈에 띄는 성장을 하기 힘든 구조로 진입했다. 최근 지속하는 공사비 급등 상황에서는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도 쉽지 않은 상태다.
현대건설이 최근 10년 동안 거뒀던 가장 높았던 영업이익률 수치는 2016년의 연결기준 6.2%, 별도기준 5.3%이다. 평균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 대표가 현대건설의 2030년 연결 및 별도 영업이익률 목표로 제시한 수치가 8%라는 점을 고려하면 에너지 사업을 향한 기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현대건설은 과거 대형원전 시공을 통해 준수한 이익을 거둔 만큼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선도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면 더 나은 수익성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현대건설은 최근 10년 동안 대형원전 사업에서 연평균 매출 3463억 원, 매출총이익 297억 원을 올렸다. 매출총이익률로는 8.6%에 이르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에너지 산업 중심의 성장에 더해 정교한 관리 체계 구축도 수익성 확보 전략으로 내세웠다.
증권업계에서도 에너지 중심의 현대건설 미래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신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대건설의 2030년 영업이익률 목표는 다소 높은 수준으로 보이지만 서울 중심 도시정비 및 복합개발사업, 단순 시공에서 벗어난 원전사업 우위를 고려하면 최근 몇 년 동안 한 자릿수 초반 수준의 이익률은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바라봤다.
김세련 LS증권 연구원은 “국내 주택시장 성장의 한계를 고려할 때 신성장동력 발굴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점차 벌어질 것”이라며 “현대건설이 제시한 재무목표는 대형원전, SMR, 국내 개발사업 등 이미 가시화한 사업 영역을 바탕으로 제시된 실현 가능한 수준의 목표치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대표는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원전사업을 놓고 “불가리아, 미국, 유럽까지 (글로벌 기업과) 협력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다양한 산업에 적용이 가능한 원자력 기술의 유연성을 보유하고 있다”며 “해외 기업과 협력을 통해 단순한 EPC(설계, 조달, 시공)를 넘어 함께 사업기회를 발굴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