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에서 하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제조업이 탄소 관세 문제를 극복하고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부산, 울산, 경상남도 등을 아우르는 동남권에 친환경 산업단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서울대 시장과정부연구센터 박상인 교수 연구팀은 31일 'RE100 산업 단지 조성과 녹색산업정책' 연구 보고서를 통해 한국 산업 경쟁력 보전을 위한 동남권 RE100 산단 조성을 제안했다.
연구진은 2026년 시행을 앞두고 있는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미국 청정경쟁법(CCA), 해외오염관세법(FPFA) 등 주요국 탄소 관세가 수출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 제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제도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뿐 아니라 전력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까지도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이 약 1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무역국 가운데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가장 부족한 나라이다.
연구진은 탄소 관세로 인한 무역 질서 변화는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더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제조업계의 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바라봤다.
한국의 주요 전략 산업인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는 2010년대까지는 높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했으나 2020년대 들어 경쟁력이 약화됐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대만 TSMC와 격차가 확대됐고 이차전지와 미래차 산업은 중국의 공격적 투자와 빠르게 증가하는 시장 점유율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중국은 지난 6년 동안 전력망에 1109조 원을 투자하는 등 재생에너지 설비를 대규모로 확장하고 있다.
연구진은 "새로운 무역 질서에서 전력원의 친환경성은 수출 경쟁력의 핵심 요소"라며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간접 배출량 감축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국내 기업들은 국내의 부족한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무역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제조설비를 해외로 내보내고 있어 산업 공동화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화학공업 중심지였던 동남권은 공동화 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다. 연구진은 충분한 대응이 없다면 동남권 제조업 부가가치는 2030년까지 2015년 대비 22.94%로 감소하고 수출액 비중은 52조 원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동남권 산업 공동화는 단순한 지역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 전체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탄소 규제라는 외부 압력과 제조 경쟁 심화라는 이중 위기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서는 RE100 산업 클러스터와 같은 전략적 대응이 절실하며 이는 산업 경쟁력 확보와 지역 경제 회생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