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키움증권이 지난해 우수한 실적을 기록했지만 축배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키움증권 수익의 원천인 ‘리테일(개인금융) 시장 1위’란 아성이 도전자들에 의해 위태해졌기 때문인데
엄주성 대표이사 사장은 방어막을 치기 위해 분주하다.
▲ 엄주성 대표이사 사장이 키움증권을 다시 '1조 클럽' 반열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키움증권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 1조982억 원을 내면서 3년 만에 ‘1조 클럽’에 복귀했다.
2020년 미래에셋증권이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 원 문턱을 넘어선 뒤 ‘1조 클럽’ 타이틀은 우수 증권사의 대표 척도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로써 2024년 키움증권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94.50% 급증했다. 순이익도 8348억 원으로 89.43%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키움증권은 국내주식 위탁매매 시장에서 오랫동안 약 30%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수성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국내주식 일평균 거래대금은 1분기(24조9천억 원), 2분기(24조3천억 원), 3분기(22조5천억 원), 4분기(19조7천억 원)에 걸쳐 줄곧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키움증권의 국내주식 위탁매매 수수료가 덩달아 줄어들 수밖에 없던 것인데 그 빈 자리는 해외주식이 메운 것으로 나타났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9월말 기준 해외주식 위탁매매 점유율에서도 20.4%로 1위를 차지했다.
2023년 말 약 2조 원 수준이던 해외주식 일평균 거래대금은 지난해 줄곧 증가해 4분기에는 4조 원을 돌파했다.
국내증시에 대한 실망감에 더해 상대적 우위를 보이는 미국주식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옮겨간 결과로 풀이된다.
해외주식 위탁매매 수수료는 많게는 국내주식의 수 배에 이르기 때문에 증권사 입장에선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그 결과 지난해 키움증권의 영업이익은 NH투자증권(9010억 원), KB증권(7807억 원) 등 몸집이 더 큰 경쟁사들도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높아진 해외주식 수요로 인해 경쟁이 격화되면서 키움증권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점은 엄 사장의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일례로 메리츠증권은 해외주식 거래 수수료 전면 무료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오면서 업계에 충격파를 몰고 왔다.
이후 메리츠증권의 해외주식 위탁 잔고가 크게 늘면서 경쟁사들도 점차 수수료 인하/면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출혈경쟁이 격화되면서 키움증권 등 대형사가 높은 점유율에도 수익성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주식 간편투자 열기를 불러온 장본인인 토스증권은 아예 키움증권을 밀어내기까지 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키움증권은 지난해 11월부터 토스증권에 해외주식 위탁매매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에 키움증권의 목표주가를 기존 18만 원에서 16만 원으로 낮추며 “웬만한 대형 증권사들이 해외주식에 공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앞으로 키움증권 주가는 점유율 방어 여부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 우려했다.
이에 엄 사장은 리테일 사업 전반을 재정비하는 데 연초부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우선 해외 위탁매매 점유율 회복을 위해 지난 4일 ‘100% 당첨 미국 빅테크 주식복권 이벤트’를 실시했다.
키움증권에서 미국주식을 처음 거래하거나 이벤트 시작일 기준 3개월 동안 미국주식 거래가 없던 고객을 대상으로 미국 7대 대형주(애플, 아마존, 알파벳, 메타,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를 소수점 형태로 100%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식 모으기’ 서비스를 이달 안에 국내 주식에서 미국 주식으로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주식 모으기란 매달 정해진 날짜에 적금처럼 주식을 사들여 모으는 방식으로 토스증권 등 핀테크 증권사들이 주무기로 삼고 있다.
▲ 키움증권이 리테일 1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한편 내달 4일 대체거래소(ATS) 출범에 대비해 자체 자동주문전송(SOR) 시스템을 운영할 준비를 마쳤다고도 7일 밝혔다.
'자동주문전송'은 고객의 주문을 받은 증권사가 거래소와 대체거래소 양 시장을 살펴가며 고객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의 거래를 자동으로 체결해주는 시스템이다. 현재 증권사 가운데 이 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키움증권이 유일하다.
향후 대체거래소 출범으로 리테일 시장에 적잖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경쟁사 대비 준비를 빠르게 마친 엄 사장의 절박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엄 사장은 1968년생으로 시흥고등학교(현 금천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투자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대우증권에 입사했고 2007년 키움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자기자본투자(PI)본부, 투자운용본부, 전략기획본부 등을 거쳐 2024년 1월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