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 판매량이 일제히 후퇴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인도 투자를 늘리고 하이브리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 다중의 전동화 전략을 펼치고 있어 내년 폭스바겐을 제치고 세계 2위 메이커가 될지 주목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상위권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량이 일제히 후퇴하면서 일부 회사들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수장을 교체하는 등 자동차 업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위기의 발원지인 중국 사업을 일찌감치 축소한 데다, 세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속 하이브리드차(HEV),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 다중의 전동화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2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 3위에 오른 현대차그룹이 중국 등지에서 판매 위기에 빠진 폴크스바겐그룹을 제치고 내년 2위에 오를지 주목된다.
2일 자동차 시장 조사업체 마크라인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3분기(1~9월)까지 현대차그룹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전년 동기보다 2.2% 줄어든 494만9511대를 팔아 지난해 이어 판매 3위 자리를 유지했다.
토요타그룹이 719만2379대로 같은 기간 세계 판매 1위를 기록했고, 이어 폭스바겐그룹이 616만8634대로 2위를 지켰다.
4위 스텔란티스는 412만7480대, 5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388만3322대로 현대차그룹 뒤를 이었다.
세계 '톱5' 완성차 업체들의 3분기 누적 판매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일제히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토요타그룹은 1년 전보다 판매량이 7.6%, 폭스바겐그룹은 2.5% 감소했다. 스텔란티스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도 각각 9.5%, 1.5% 줄었다.
세계 자동차 판매량 2위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2일(현지시각) 폴크스바겐 노동자들은 독일 전역에서 경고 파업에 들어갔다. 앞서 지난 10월 폴크스바겐은 독일 공장 가운데 최소 3곳을 폐쇄하고, 임금 10% 삭감, 인력 감축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이 위기를 맞은 데는 최대 시장인 중국 판매가 부진한 영향이 크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지난해 폴크스바겐은 중국에서 전년보다 0.2% 줄어든 222만7635대를 팔아 중국 전기·하이브리드차 제조업체 BYD(비야디, 257만1109대)에 판매 1위 자리를 내줬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는 63만7907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보다 판매량이 20%나 뒷걸음쳤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연간 이익 가운데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벌어들였다.
세계 판매 1위 토요타그룹 역시 중국에서 고전으로 글로벌 전기차 판매에 타격을 받고 있다.
토요타그룹은 중국에서 지난해 연간 170만2773대를 팔아 1년 전보다 판매량이 3.8% 줄었다. 올해 1~3분기엔 45만4092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판매 감소율이 14.3%로 급격히 가팔라졌다.
세계 판매 4위 스텔란티스 상황도 좋지 않다. 이날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두고 전격 사임했다.
스텔란티스 역시 최근 중국 전기차 실적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타바레스는 지난 2021년 피아트크라이슬러오토모빌과 푸조를 보유한 PSA그룹의 합병으로 스텔란티스가 탄생할 때부터 회사를 이끌어왔다. 임기는 2026년 초까지이지만 경영악화에 따른 이사회 내부 견해 차이가 발생하자 스스로 사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친환경차 전환이 빨라지고, BYD 등 현지 자동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판매에서 약진하면서 폭스바겐과 도요타 등 정통의 강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내수 시장에서 급성장하면서 2019년만 해도 34.1%에 그쳤던 중국 토종 브랜드의 자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50%를 넘어섰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2017년 고고도미사일(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한한령으로 중국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찌감치 현지 사업 규모를 줄였다.
현대차는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지난 1월 충칭 공장을 현지 업체에 매각한 데 이어 창저우 공장도 매각한다는 방침을 정해, 기존 5개였던 현대차 중국 현지 공장은 2개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에서 중국 판매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도요타그룹은 약 17%, 폭스바겐그룹은 약 35%에 달하는 반면 현대차그룹은 약 5% 수준에 그쳤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중국을 대신해 세계 3위 자동차 시장 인도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이 10월22일 인도 뭄바이의 인도증권거래소(NSE)에서 열린 인도 법인 현지 증시 상장 기념식에서 아쉬쉬 차우한 인도증권거래소(NSE) 최고운영자(CEO)로부터 기념품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
지난해 인도에서 60만2111대를 팔아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운 현대차는 지난해 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에 위치한 푸네공장을 인수, 연간 20만 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거점으로 설비 개선을 진행중이다. 기존 첸나이 공장 82만4천 대와 푸네 공장, 기아까지 합치면 그룹은 내년 인도에서 총 150만 대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세계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빠진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EREV 등 다양한 친환경차 파워트레인을 확보한 점도 세계 판매 경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는 준중형·중형 차급 중심으로 적용됐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모든 차종으로 확대 적용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기존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없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도 모든 내연기관 차종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한다.
지난 10월 첫 전기차 생산을 시작한 연간 30만 대 규모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HMGMA)에서는 당초 계획과 달리 하이브리드차도 병행 생산키로 했다.
현대차는 2026년 말 북미와 중국에서 EREV를 양산해 새로운 전기차 수요 공략에 나선다.
EREV는 전기차와 같이 전기로 바퀴를 굴리지만 내연기관 엔진이 전기를 생산해 배터리 충전을 지원하는 차량이다. 업계에선 엔진이 발전기 역할에만 국한되고, 동력은 전기모터에서만 발생하는 만큼 EREV를 하이브리드차가 아닌 전기차로 분류한다. 현대차는 주유와 충전을 동시에 하는 EREV는 1회 충전으로 9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미 시장에는 현대차와 제네시스 브랜드의 중형 SUV 차종을 투입해 연간 8만 대 이상을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에선 준중형 SUV 차종을 연간 3만 대 이상 판매하고, 시장 상황에 맞춰 그 밖의 지역에서 EREV를 출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김창환 전동화에너지솔루션담당 전무는 '2024 인베스터데이'에서 "EREV는 우리가 기존에 갖춘 기술을 공용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EREV라도 현대차는 고객 수요에 가장 부합하는 기술을 전달할 것이란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