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경착륙 우려가 커지고 우리 기업은 성장엔진이 둔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CEO의 판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경제위기의 분수령에서 주요 기업을 이끄는 CEO들의 리더십과 경영전략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삼성전자 ‘이건희 시대’ 성장세 끝?, 이재용 AI·파운드리·로봇에서 새 돌파구
②LG 구광모 6년 ‘가성비 중국’의 위협, HVAC·XR·AI 신사업 초격차가 관건
③중국 저가공세에 흔들리는 SK그룹, 최태원 리밸런싱으로 배터리 사업 키우기
④현대차그룹 '전기차, 후퇴는 없다', 정의선 뚝심 경영으로 '캐즘' 돌파
⑤네이버 성장률 둔화 본격화, 최수연 토종 AI로 정면 돌파
⑥국내 실적 부진 넥슨 이정헌, ‘해외확장, 선택과 집중’으로 ‘연매출 4조’ 겨냥
⑦강해지는 금융권 내부통제 개선 압박, 양종희 KB금융 지배구조 ‘리딩’ 과제 무겁다
⑧‘거인’ 미래에셋 박현주의 혜안, 글로벌IB 향해 쉼없이 달린다
⑨생보업황 악화에 지주사 전환까지 앞둔 교보생명, 신창재 무기는 ‘디지털’
⑩현대카드 정태영 업황 악화 속 '침착한 전진', 건전성 수익성 혁신성 모두 챙긴다
⑪갈림길에 선 롯데, 승부사 신동빈 '선택과 집중' 강도 높인다
⑫DL이앤씨 비우호적 환경에 악화한 수익성, 이해욱 건설명가 재건 기반 다지기
⑬신세계그룹 정용진, 재계순위 10위권 도약시킨 이명희처럼 위상 키울 무기는?
⑭대우건설 건설경기 부진에 수익성 악화, 정원주 ‘글로벌 대우’ DNA 회복 절실
⑮인텔 반도체 ‘부동의 1위’ 무너뜨린 CEO 3인, 경영전략 실패가 삼성에 기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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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가운데)이 지난 7월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열린 AIB 연례행사에서 '올해의 경영자'상을 수상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금융사에게 해외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진다.
국내 금융시장이 경제성장률 둔화와 고령화, 가계부채 우려 등으로 이미 성장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사 가운데 해외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미래에셋그룹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어려운 시기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려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웠다. 지난해 말에는 해외사업에 중점을 둔 전문경영인 2기 체제를 출범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기준 미래에셋증권은 해외법인 12곳, 해외사무소 3곳으로 총 15곳의 해외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다.
그 뒤를 한국투자증권(11곳), NH투자증권(8곳), KB증권(6곳), 신한투자증권(6곳), 삼성증권(5곳), 하나증권(1곳) 등이 따른다.
국내 증권업계는 이미 포화 상태로 해외 진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자기자본 3조 원 이상 증권사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들이 규모는 충분히 커졌으나 지나치게 국내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들이 해외로 진출해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뿐 아니라 금융당국도 지원을 약속하며 국내 증권사의 해외 진출을 강조하고 있지만 좀처럼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사진)의 해외 진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
지난해 국내 9개 종투사(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메리츠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키움증권) 가운데 해외 거점을 늘린 곳은 미래에셋증권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종투사들은 해외 거점을 줄이거나 유지하는 데 그쳤다.
미래에셋증권의 이같은 결정엔 해외 법인이 적잖은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상반기 미래에셋증권의 해외법인 세전이익은 600억 원 수준이다. 홍콩, 런던, 미국 법인의 순이익이 총 275억 원이며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법인이 총 307억 원의 순이익을 거둬들였다. 기타지역에선 17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고른 이익을 거둔 가운데 특히 신흥국에서의 수익이 높았던 점이 눈에 띈다.
미래에셋그룹의 해외 성과는 증권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해외사업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올해 7월 말 기준 총 운용자산(AUM)은 360조 원인데 이 가운데 약 43%인 156조 원을 해외에서 운용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11년 캐나다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 ‘Horizons ETFs’ 를 시작으로 2018년 미국 ‘Global X’, 2022년 호주 ‘ETF Securities’를 인수하는 등 적극적 인수합병으로 해외사업을 키웠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달 9일 서울 종로구에서 '나스닥×TIGER ETF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나스닥과 손잡고 글로벌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첫 세미나이다. 이 자리에서 세계 최초 인공지능(AI) 반도체주 지수인 '미국AI필라델피아반도체 지수(ASOX)'를 선보였다.
박현주 회장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해외법인을 철수하지 않으면서 해외진출을 향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8년 미래에셋그룹 글로벌전략고문(GSO)으로 옮겨간 뒤에도 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전문경영인 2기 체제를 가동하며 미래에셋증권의 수장 자리에 글로벌 전문가인 김미섭 대표이사를 앉히고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을 이끌고 있는 스와럽 모한티 대표를 부회장으로 올리는 등 해외사업에 힘을 실었다.
현재 박 회장이 가장 힘주는 시장은 인도로 평가된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인도 셰어칸 증권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셰어칸은 현지 9위 증권사로 임직원 3500여 명, 고객 계좌 총 370만 개를 보유하고 있다. 인도 전역 400개 지역에 130여 곳의 지점과 5천 명 이상의 비즈니스 파트너 등 탄탄한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다.
지난해 말 승진한 스와럽 모한티 부회장 역시 그룹 내 첫 외국인 부회장으로 박 회장이 그만큼 인도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2030년 해외법인 세전 이익이 6422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인도에서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 미래에셋증권은 인도네시아에서도 90여 개 증권사 가운데 2020~2023년 동안 주식 위탁매매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 미래에셋증권은 향후 인도 시장에서 3천억 원 수준의 순이익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신흥국 시장에 일찍부터 초석을 다져놓은 박 회장의 혜안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박 회장은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7월 세계적 권위의 ‘국제경영학회(Academy of International Business) 2024 서울’에서 ‘올해의 경영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시아 금융인 가운데서는 첫 수상이다.
박 회장은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해외진출을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그는 미래에셋그룹을 세운 뒤 3년 만에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 UC버클리로 떠났다.
박 회장은 올해의 경영자상 시상식에서 “해외경험을 쌓으면서 한국증시만 볼 게 아니라 해외증시로 분산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것이 분산투자를 기초로 한
박현주 펀드의 출시로 이어졌다.
미래에셋그룹이 해외에서 긍정적 결과를 내기 시작했으나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진화를 완수하기 위해 박 회장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에셋그룹의 일본 진출 당시 그를 가까이서 보좌했던 한 실무자는 “박 회장은 주말에도 쉬는 날이 없었다”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저녁 늦은 시각에도 전화하곤 했는데 이것이 미래에셋그룹의 일본 진출까지 이어졌다”고 돌아봤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