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제동은 시속 30~70km로 주행하다 러버콘이 표시한 곳에서 한 번에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아 일정 거리 안에 정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짧지 않은 세월 갖은 도로 환경에서 운전해봤지만, 고속으로 달리다 한 번에 브레이크 밟는 급제동은 이곳에서 처음해보는 경험이었다. 급제동은 위험하다는 학습된 본능 때문에 판을 깔아줘도 과감히 차를 멈춰세우는 게 쉽지 않았다.
인스트럭터는 무전으로 "브레이크를 부러뜨릴 듯 밟아야 한다"며 "만약 실제로 부러뜨리면 그 차량을 선물하겠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서너 차례 반복 끝에야 망설임 없이 한 번에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을 수 있었다.
긴급 회피는 비슷한 속도로 주행하다 러버콘으로 막힌 구간을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180도씩 빠르게 움직여 빠져나오는 코스다.
▲ 인스트럭터가 긴급 회피 주행 시범을 보이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시속 30km의 낮은 속도로 긴급 회피를 할 때부터 차량 회피 지점 인근 2개의 러버콘이 쓰러졌다. 참가자들이 지켜보고 있어 민망도 하고 실제 상황이라 생각하니 아찔하기도 했다.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 시점 기자에게 다목적 주행코스 운전은 이미 지겨운 노동이 아니라 도전적 목표로 바뀌었다.
레벨1 프로그램에서 가장 핵심인 긴급제동과 긴급회피는 일반 도로에선 좀처럼 해볼 수 없는 주행이란 점에서 운전 경력과 관계없이 한번 쯤은 꼭 경험해볼 만한 프로그램이라 생각됐다.
사고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차량 브레이크 한계와 조향의 한계를 익숙해질 정도로 경험하고 나니 차량과 운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도 같다.
레벨1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우측 코너 7개, 좌측 코너 9개 등 16개 코너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폭 11m, 길이 3.4km의 마른 노면 서킷을 인스트럭터 차량을 따라 줄지어 주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레벨2 프로그램에서 활용하는 기아 EV6 GT. <현대자동차그룹>
레벨2는 스포츠 드라이빙 입문 단계로 차량의 퍼포먼스를 느끼고, 기본적 컨트롤 요령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레벨1과 같이 이론 교육으로 시작됐다.
스포츠 드라이빙 입문이란 설명에 걸맞게 레벨2 이론 교육에는 서킷 주행에서 레코드라인(코너에서 최단거리로 최고속도를 낼 수 있는 레이싱 라인)에 관한 간단한 설명도 포함됐다.
요약하면 코너 진입 전 코스 바깥쪽에 붙어 경로를 직선화하면서 충분히 감속을 하고, 코너의 정점(C.P) 방향으로 스티어링휠을 조작해 진입한 뒤, C.P 통과 후 가속할 때 코스 바깥쪽 방향으로 주행해 경로를 지속 직선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C.P에서 가속은 언더스티어가 뒤따르므로 금물이라고 한다. 언더스티어는 이상적인 코너링 방향보다 차량이 바깥쪽으로 나가버리는 경향을, 오버스티어는 반대로 안쪽으로 꺾어드는 경향을 말한다.
이날 이론 교육에서 드리프트 주행이 코너에서 스피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버스티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란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레벨1을 거치며 조금은 주눅이 들었던 상황이라 레벨2 난이도에 관한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농구로 치면 레벨1은 드리블과 기본기, 레벨2는 이를 활용한 연습게임과 같아 어렵지만 훨씬 내용이 다양하고 재미 있었다.
기아의 고성능 전기차 EV6 GT를 타고 다목적 주행장으로 이동해 짧은 워밍업을 한 뒤, 타깃 제동과 고속 회피 제동을 연습했다. 이는 레벨1의 긴급 제동, 긴급 회피를 심화해 2차사고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 레벨1을 통해 급제동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데다 이미 자존심을 내려놨기에 훨씬 편안하게 배울 수 있었다.
레벨2에는 러버콘으로 만든 커브와 제동 구간이 이어진 코스를 두 참가자가 반대 편에서 같은 방향으로 출발해 꼬리잡기 경쟁을 펼치는 폭스 헌팅도 마련됐다.
인스트럭터는 폭스 헌팅 진행 중 무전으로 경쟁자와 거리를 끊임없이 중계하며 자존심을 자극했고, 그 덕에 최고의 집중력으로 차를 몰며 이날의 제동·회피 주행 등 교육으로 향상된 운전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레벨2 프로그램의 재미는 킥 플레이트 코스와 고속주회로에서 도드라졌다.
▲ 인스트럭터가 킥 플레이트 코스에서 주행 시범을 보이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킥 플레이트 코스에선 물을 뿌려 젖은 노면에서 차량이 지나갈 때 킥 플레이트 장비가 바퀴를 틀어 오버스티어를 유발하면 빠르게 스티어링 휠을 반대 방향으로 틀어 차체를 안정적으로 되돌리는 연습을 한다.
해당 코스 노면은 눈이 내린 지면과 비슷한 마찰계수를 유지한다고 한다. 반복할수록 반응속도가 빨라지고 차량 컨트롤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차량이 회전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이런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고속주회로에서 진행한 드래그 체험은 이날 차가 마음같이 움직이지 않아 답답했던 기분을 한 번에 확 뚫어줬다.
드래그 체험은 2인 1조로 출발 신호에 맞춰 액셀을 끝까지 밟아 직선의 고속주회로를 질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EV6 GT는 최고출력 585ps(마력), 최대토크 75.5kgf.m의 힘을 낸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단 3.5초 만에 가속해 내연기관차 슈퍼카와 맞먹는 성능을 갖췄다.
주행모드를 바꿔가며 노멀 모드, 스포츠 모드, GT모드로 각 한번씩 총 3번 드래그 레이스를 펼쳤다.
출발선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800m 가량 될 법한 감속 지점까지 노멀 모드에서도 EV6 GT의 계기판 속도는 180km/h를 돌파하고 있었다.
GT모드에선 한 단계 더 높은 강한 힘이 느껴졌다. 같은 구간 감속 지점에서 속도계는 195km/h를 나타냈다.
레벨2 역시 마른 노면 서킷을 주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다만 레벨1과 달리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네 참가자의 순서를 바꿔 인스터럭터 바로 뒤를 따라 서킷을 주행할 기회를 줬다.
같은 코스지만 더 많은 연습을 하고 레코드 라인 강의를 듣고 난 뒤라 레벨2에선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인스트럭터 차량 바로 뒤에서 무전 설명을 들으며 코너를 진입, 탈출하니 레이싱 원리를 깨달은 것 같다는 착각도 들었다. 무전에 충실히 따르며 주행하니 굽이치는 어려운 코스에서도 주행속도가 130km/h를 넘나들었다.
▲ 체험코스 출발점과 연결된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강의실. <비즈니스포스트>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의 드라이빙 프로그램은 안전운전에 초점을 맞춘 레벨1, 운전의 즐거움을 더한 레벨2, 서킷의 기초를 배우는 레벨3, 그 위 현대 N과 기아, 제네시스 브랜드별로 마련된 프로그램들로 구성됐다. 레벨1부터 순차적으로 수료해야 상위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레벨1과 레벨2를 체험한 이번 행사에 참가하면서, 드리프트를 해보려면 이 기회에 기본 프로그램을 수료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실제 체험한 레벨1과 레벨2는 일상 운전에서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체험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심자뿐 아니라 새로운 재미를 찾고 싶은 모든 운전자에 추천할만 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