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중소기업 대출시장이 올해 은행권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대출자산 성장을 이끈 대기업 대출 수요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가계대출은 금융당국 눈초리에 경쟁적 확대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져서다.
▲ 대기업 대출 수요 둔화 속에 중소기업 대출시장이 올해 은행권 격전지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
은행권은 이에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는 동시에 리스크관리와 성장 가운데 균형점을 찾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은행은 모두 지난해 대기업 대출자산을 크게 늘리며 대출 성장세를 이어갔다.
지난 1년 사이 대기업 대출 성장률을 보면 하나은행이 31.5%로 가장 높고 KB국민은행(30.1%)과 신한은행(25.8%), 우리은행(22.8%)이 뒤를 이었다.
하나은행 대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 6조 원가량 늘며 전체 대출자산 증가분 16조 원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4대 은행 가운데 전체 대출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341조 원)도 지난해 대기업 대출이 9조 원 가량 늘며 전체 대출 확대를 이끌었다. 지난해 국민은행 가계대출은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은행 대출은 크게 가계대출과 기업대출로 구성되는데 기업대출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SOHO(개인사업자) 등으로 나뉜다. 대기업 대출은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아 은행에는 안정적 성장의 발판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 같은 대기업 대출 증가세가 올해는 더뎌질 가능성이 나온다.
금융권은 지난해 대기업 대출 증가에 특수한 배경이 있었다고 바라본다.
2022년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상승과 2022년 말 레고랜드발 신용경색 여파 등으로 지난해 회사채 발행시장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향후 기준금리가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만큼 대기업이 돈을 구하기 위해 은행에 손을 벌리기보다 직접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조달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대기업 대출수요는 3으로 지난해 3분기 17보다 낮게 니왔다.
한은의 대출행태 서베이는 국내 금융사 여신업부 총괄책임 담당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대출수요 숫자가 작다는 것은 그만큼 대기업 대출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 담당자가 줄었다는 것을 뜻한다.
정광명 DB금융투자 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중앙은행의 금리수준이 낮아지고 이에 따라 회사채 시장이 정상화하면서 은행의 대기업 대출 증가세 둔화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은행권은 올해 금융당국 눈초리에 가계대출 확대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여겨진다.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23년 12월18일 금융연구원에서 열린 '금융위-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자리에서 가계부채를 올해 과제로 지목했다. <금융위원회> |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주요 금융당국 인사는 올해 역시 최우선 과제로 가계대출 안정을 꼽고 있다.
은행권은 지난해 금융당국이 50년 주택담보대출 논란 등 가계부채 증가에 은행권 책임은 없는지 들여다보면서 공격적으로 가계대출 확대에 나서지 못했다.
4대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아파트)과 전세대출로 확대된 온라인 대환대출 서비스도 부담이다.
새로운 서비스에 4조2천억 원 규모의 주담대 자금이 한 달 만에 움직였지만 4대 은행보다는 ‘무점포 영업’을 내세운 인터넷은행이 수혜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는 결국 중소기업 대출이 4대 은행의 주요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4대 은행은 벌써부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기업명가 재건을 선언한 우리은행이 대표적이다.
우리은행은 조병규 행장이 지난해 7월 취임한 이래 기업금융 전초기지 ‘BIZ프라임센터’를 주요 공단에 만들고 있다. 4대 은행 가운데 대기업 대출 규모 1위인 우리은행도 중소기업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다만 4대 은행은 리스크관리에도 그만큼 더 많은 신경을 쓸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대출은 위험가중치가 높아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가중자산이 늘면 주주환원 기준이 되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줄어들어 은행은 세심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보다 강해진 자본 규제도 중소기업 대출의 섣부른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은행권은 올해 5월까지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1%를 추가로 적립해야 하는데 위험가중자산이 늘면 경기대응완충자본을 그만큼 더 쌓아야 한다.
4대 금융은 이에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며 대부분 대출 성장을 ‘명목 GDP 성장률 수준’으로 조절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나금융과 신한금융은 특히 이를 IR자료에 명시하며 리스크관리와 성장 속 균형을 노리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