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이 2023년 2월9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주관 '2023 올해의 차' 시상식에서 XM3 E-테크 하이브리드로 '올해의 하이브리드 SUV'부문을 수상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르노코리아> |
[비즈니스포스트] 국내완성차 5사 가운데 외국본사를 둔 한국GM과 르노코리아자동차가 2023년 명암이 엇갈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GM은 지난해 웃었고 르노코리아는 울었다.
다만 한국GM은 전기차 전환과 관련해 확정된 계획이 없는 반면 르노코리아는 뚜렷한 단계별 친환경차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어 올해가 두 회사의 처지가 달라지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완성차업계 판매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한국GM과 르노코리아는 2023년 한해 동안 '천양지차'의 판매실적을 냈다.
한국GM은 작년 글로벌 시장에서 46만8059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6년 만에 최다판매실적 기록을 갈아치웠다. 2022년보다 판매량이 76.6%나 증가했다.
반면 르노코리아는 지난해 국내외에서 전년보다 38.5% 줄어든 10만2048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한국GM 판매량의 4분의1에도 못미친 실적이다.
다만 올해는 이런 두 회사의 흐름이 바뀌는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전기차 전환 추세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르노코리아는 올해를 기점으로 한국GM과 비교해 명확한 전동화 로드맵을 마련해 뒀기 때문이다.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은 2022년 10월 국내에 출시한 XM3 하이브리드를 시작으로 2024~2025년까지는 하이브리드 신차를 생산해 라인업 전면에 배치하고 2026년 이후 전기차로 전환하는 단계적 전동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르노코리아는 현재 프랑스 르노그룹, 중국 길리(지리)그룹과 함께 올 하반기를 목표로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하이브리드차(오로라1)를 출시하는 데 전사적 역량을 쏟고 있다.
르노코리아는 친환경 신차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어두운 시기를 지나 태양이 떠오른다는 뜻을 담아 '오로라(로마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프로젝트'라 부른다.
내년엔 중·대형급 하이브리드 신차(오로라2)를 출시해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르노코리아는 이뿐 아니라 2026년 출시를 목표로 전기차 모델인 오로라3 프로젝트에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전환기 해외에 본사를 둔 외투기업이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전기차 일감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르노코리아는 이와 별개로 내년부터 북미와 국내에 판매할 스웨덴 전기차업체 폴스타의 중형 전기 SUV 폴스타4를 부산공장에서 위탁생산한다.
드블레즈 사장은 2022년 3월 취임한 뒤 그해 1848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3년 만의 흑자전환을 이끈 바 있다.
르노코리아가 앞서 2020~2021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은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던 닛산 로그 위탁생산 수출 계약이 2019년 9월 종료된 영향이 컸던 만큼 폴스타발 전기차 일감은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실적을 반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GM은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 등 2대의 글로벌 전략차종 생산에 집중해 연간 50만 대 수준으로 생산능력을 극대화하는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 만큼 2025년까지 전기차를 포함한 추가적 신차 생산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미국 GM 본사는 2025년까지 한국에 전기차 10종을 출시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 물량은 모두 미국 GM본사에서 수입해 판매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6년 이후에는 한국GM이 전기차 일감을 배정받을 가능성은 남아있다.
로베르토 렘펠 전임 한국GM 대표이사 사장도 지난해 초 "올해 최우선 목표는 50만 대를 생산하는 것"이라면서도 "2~3년 국내 공장을 풀가동하면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적기가 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이사 사장으로선 올해 국내생산 신차 출시 없이 지난해 달성한 높은 판매 성장세를 이어가야해 어깨가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해 한국GM과 르노코리아의 엇갈린 판매실적은 어느정도 예견됐던 측면이 있다.
▲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이사 사장이 2023년 8월23일 인천 부평공장을 방문해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의 생산 현장을 점검하하고 있다. < 한국GM > |
비자레알 사장은 한국GM이 '꽃길'을 걷고 있던 지난해 8월1일 사령탑에 올랐다.
한국GM은 2022년 영업이익 2766억 원을 내며 9년 만에 흑자전환을 달성한 데 이어 2023년 1~7월 글로벌 시장에서 25만5011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며 전년 동기보다 판매실적을 71.4% 크게 늘렸다.
해당 기간 판매실적은 한국GM의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쌍끌이 했다. 두 차종은 로베르토 렘펠 전임 사장이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 재직시절부터 개발을 진두지휘해 내놓은 글로벌 전략 차종으로 2023년 1~7월 합산 24만9914대가 팔려나가며 전체 판매량의 98%를 책임졌다.
비자레알 사장은 취임 뒤 첫 현장 경영 행보로 한국GM 부평공장을 방문해 "창원과 부평공장을 합쳐 연간 50만 대 규모의 생산역량을 확보한다는 우리의 목표는 변함이 없다"며 "무엇보다 무결점의 제조 품질을 바탕으로 차질 없는 신제품 생산을 통해 폭발적 글로벌 수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약 47만 대의 판매실적을 올린 비자레알 사장은 취임 첫해에 회사의 도전적 생산체제 구축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반면 드블레즈 사정은 지난해 오로라 프로젝트에 '올인'한 르노코리아의 신차 스케줄상 신차 없이 판매 경쟁을 펼쳐야 하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드블레즈 사장은 작년 9월 극심한 판매 부진을 돌파하기 위해 국내에서 대표 볼륨모델인 QM6 가격을 최대 195만 원 내리는 초강수를 뒀지만 신차 공백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올해부터 드블레즈 사장은 최악의 판매실적을 뒤로 하고 오로라 프로젝트의 결실을 맞이하게 됐다.
드블레즈 사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오로라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지난 2년은 어두운 시기였는데 2026년이 되면 다시 태양이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