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전고체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기술 주도권을 선점해 미래 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 사장은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는 리튬이온배터리 시장에서는 영향력 확대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초점을 맞춰왔는데 그동안 다진 이익체력을 기반으로 차세대배터리 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준비를 하고 있다.
▲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2일 삼성SDI 기흥사업장에서 열린 새해맞이 행사에서 2024년 신년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삼성SDI>
2일 삼성SDI 안팎에 따르면 최 사장은 글로벌 배터리시장의 수요 침체에 따라 이전보다 낙관론이 수그러든 분위기 속에서도 기술력 확보에 더 많은 자원과 역량을 결집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 사장은 이날 기흥사업장 대강당에서 열린 ‘2024년 새해맞이’ 행사에서 “최근 신설한 ASB(All Solid Battery·전고체 배터리)사업화추진팀을 중심으로 미래 배터리시장의 게임체인저인 전고체배터리의 사업화를 본격 추진해 차세대 제품·기술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SB사업화추진팀은 중대형전지사업부 내 직속 조직으로 지난해 말 정기 조직개편을 통해 신설됐다.
전고체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이온을 전달하는 전해질이 고체 상태인 배터리다. 액체 전해질을 적용하는 기존 리튬이온배터리보다 구조적으로 더 단단하고 안정적이다. 덕분에 에너지밀도가 높고 화재나 폭발 위험성도 작다.
특히 삼성SDI의 전고체배터리는 혁신 소재 기술로 수명을 개선한 무음극 기술을 특징으로 한다. 무음극 기술은 음극에 리튬을 쓰지 않거나 극소량만 적용하는 기술이다.
배터리업계에서는 삼성SDI가 전고체배터리의 사업화 추진 조직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만큼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삼성SDI는 2022년부터 구축해왔던 경기 수원시 SDI연구소에 전고체배터리 시험생산(파일럿) 라인을 지난해 완공해 시제품을 제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삼성SDI는 전고체배터리의 상용화 시점을 2027년으로 잡고 있다.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빠른 상용화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로 범위를 넓혀도 주요 배터리·완성차 업체 가운데 삼성SDI보다 앞서서 전고체배터리 상용화 목표를 정해 둔 곳은 별로 없다.
당초 일본 토요타가 삼성SDI와 마찬가지로 2027년에 전고체배터리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천명한 바 있지만 대량 생산까지는 좀 더 시일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삼성SDI로서는 전고체배터리 양산체제를 구축해 초기 시장을 선점한다면 배터리시장 내 위상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삼성SDI 전고체배터리 모형. <비즈니스포스트>
전고체배터리에 앞서 46파이 원통형배터리 사업은 조만간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의 46파이 원통형배터리는 기존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원통형배터리의 지름을 기존 21mm에서 46mm 수준으로 키워 성능을 대폭 향상시킬 목적으로 개발하는 제품이다.
지름 46mm 원통형배터리는 지름 21mm 제품보다 에너지용량은 5배, 출력은 6배 개선되며 보다 낮은 비용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 전고체배터리 이전 단계에 상용화 잠재력이 높은 차세대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삼성SDI는 46파이 원통형배터리 시제품을 제너럴모터스(GM)를 비롯한 고객사에 공급한 뒤 본격 공급계약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SDI는 다른 국내 경쟁사들이 글로벌 생산거점 구축과 공격적 증설확대를 진행했던 국내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양적 성장에 보수적 태도를 취해왔다.
특히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북미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이 이미 생산시설을 가동하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을 실적에 반영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SDI는 북미 공장 가동을 본격화하는 2025년 이후에야 세제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삼성SDI는 연구개발에는 경쟁사보다 많은 역량을 투입하며 기술 확보를 위해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SDI가 2022년 연구개발비 투입한 자금은 1조764억 원으로 매출의 5.4%에 이른다. 같은 기간 국내 배터리 선두 LG에너지솔루션은 연구개발비로 8761억 원을 썼다. 매출의 3.4% 수준이다.
삼성SDI가 절대액수로 보나 매출 대비 비중으로 보나 LG에너지솔루션보다 연구개발을 중시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SDI는 올해 1~3분기에도 연구개발에 8364억 원을 지불하며 기술 중시 기조를 유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같은 기간 연구개발비 7303억 원을 썼다.
공격적 증설 대신 내실을 갖추는 경영전략으로 이익체력을 강화한 점은 최윤호 사장이 추진하는 기술경영을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최 사장은 최임 이후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을 강조하며 외형 확장보다 수익성 개선에 초점을 두며 이익체력을 강화하는 데 힘써왔다.
삼성SDI의 영업이익률은 2022년 8.98%로 국내 셀 제조사 3사 가운데 수익성이 가장 높았다. 2022년 LG에너지솔루션 영업이익률은 4.74%, SK온은 영업손실을 거뒀다.
2023년에도 삼성SDI는 수익성 측면에서 경쟁사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정보회사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증권사들의 실적 추정치 평균(컨센서스)을 보면 2023년 삼성SDI 영업이익률은 7.93%, LG에너지솔루션 영업이익률은 7.02%로 추정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서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 혜택을 1~3분기 누적 4267억 원이나 거둬들였는데도 삼성SDI가 수익성 측면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인 셈이다.
이런 내실 위주의 경영기조는 삼성SDI가 배터리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에서도 안정적 실적을 유지할 이익체력을 갖추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2년은 모든 불확실성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해”라면서도 “삼성SDI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국내 배터리 셀 3사 가운데 2024년 수요둔화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