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더인 TSMC 회장이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투자 차질 등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류더인 TSMC 회장.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의 류더인 회장이 물러나는 배경에는 미국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투자 지연 및 정부 지원 불확실성 등에 대한 책임론이 자리잡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웨이저자 CEO의 회장 취임을 계기로 TSMC가 미국에 시설 투자 규모를 축소하는 등 큰 폭의 전략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든다.
26일 IT전문지 톰스하드웨어 보도에 따르면 류더인 회장의 퇴임 발표는 다소 갑작스럽고 예상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목소리가 대만 현지언론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류더인 회장은 내년 중순 열리는 TSMC 주주총회를 끝으로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웨이저자 CEO가 후임으로 낙점돼 주주총회 및 이사회 동의를 거쳐 회장직을 승계한다.
톰스하드웨어는 류더인 회장이 TSMC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한 만큼 퇴임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지만 경영진 교체와 관련한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장중머우 TSMC 창업자가 2018년에 사임을 직접 발표한 것과 달리 TSMC가 류더인 회장을 대신해 퇴임을 알리는 발표자료를 내놓은 점도 의문을 남긴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류더인 회장이 TSMC의 경영상 의사결정과 관련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이사회 등의 결정에 따라 타의로 물러나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만 경제지 차이쉰은 업계에서 입수한 정보를 인용해 류더인 회장이 TSMC의 미국 파운드리 투자 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진 데 책임을 안고 사임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400억 달러(약 52조 원)를 들여 두 곳의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첫 번째 공장은 당초 2024년 말 가동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그러나 TSMC가 미국 현지 노동자들과 갈등을 빚고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동 시점은 2025년 상반기 말로 늦춰졌다.
TSMC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기대하고 대규모 투자에 나섰지만 아직 지원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애리조나 반도체공장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만약 TSMC가 미국에서 예상보다 적은 보조금을 받거나 지원이 너무 늦게 이뤄진다면 투자 비용 대비 수익성이 크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
차이쉰에 따르면 장중머우 TSMC 창업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류더인 회장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결정에 만족스럽지 않다는 발언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장중머우 창업자는 2018년 TSMC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난 뒤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차이쉰은 장중머우가 여전히 TSMC의 내부 여론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류더인 회장의 책임론에 무게를 실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TSMC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는 이미 여러 걸림돌을 만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주요 협력사들이 미국에 시설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차이쉰은 TSMC가 미국에서 협력사 공급망을 확보할 수 없다면 반도체 대량생산을 순조롭게 이뤄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큰 폭의 적자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류더인 회장의 사임은 자연히 TSMC가 미국 시설 투자와 관련해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근거라는 해석이 나왔다.
▲ TSMC가 공식 링크드인 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공장 모습. < TSMC > |
웨이저자 CEO가 회장에 취임한 뒤 TSMC의 미국 반도체 투자 계획에 큰 변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이어졌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규모와 시기가 모두 불투명해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투자를 축소하는 등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차이쉰은 “TSMC는 미국 공장에서 발생할 만한 리스크를 사전에 방어하고 전략을 수정해야 할 것”이라며 “웨이저자가 투자 축소 등 방식으로 자금 부담을 낮추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만약 TSMC가 예상대로 애리조나 공장 투자 규모를 축소하게 된다면 이는 삼성전자와 인텔 등 미국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신설하는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미국 고객사들이 TSMC에 맡기려 했던 반도체 위탁생산 물량 일부를 삼성전자와 인텔 등으로 분산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자연히 TSMC의 회장 교체가 미국 파운드리 시장에서 반사이익으로 돌아오는 시나리오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톰스하드웨어는 “류더인 회장의 입지는 이미 장중머우 창업자가 미국 투자 계획을 비판했을 때부터 불안한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이러한 배경이 거취에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