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는 2025년 출시할 준대형 SUV 팰리세이드 2세대 풀체인지 모델(LX3)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은 2024 팰리세이드. <현대차> |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 인기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이에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수익성 높은 고급 및 대형 차종을 중심으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이는 전기차 전환기 투자체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10월 국내에서 하이브리드차는 모두 24만9854대가 팔려 전년 동기(17만4074대)보다 판매량이 43.5%나 증가했다.
2022년 국내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2021년보다 14.3% 증가하는 데 그친 바 있다.
이와 달리 올해 들어 10월까지 국내에서 전기차는 모두 13만356대가 판매돼 작년 동기(13만9218대)보다 6.4% 뒷걸음쳤다. 2022년 국내 전기차 판매량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무려 63.8%였다.
친환경차 주도권이 전기차로 넘어가다가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되살아 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전기차 판매 시장이 위축된 원인으로는 여전히 높은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 정부의 전기차 대당 구매 보조금 축소 등 복합적 요인들이 지목되고 있다.
이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충전 관련 불편이 없는 하이브리드차가 전기차의 대안으로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국내에만 국한된 추세가 아니다.
데이터분석 및 컨설팅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2020년 이후 2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한 데 이어 올해도 3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미국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는 140만 대가 판매돼 현지 전체 자동차시장의 9%를 차지하는 반면 전기차는 120만 대로 8%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에선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의 구매보조금 등 강력한 전기차 판매 지원정책이 시행되면서 하이브리드차 인기가 하락세를 보였지만 최근 반등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의 하이브리드차 침투율(해당 상품을 구매하는 목표시장에서의 비중)은 올 10월 기준 8.3%를 기록하며 다시 전기차 침투율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이를 놓고 부족한 충전 인프라와 높은 전기차 가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를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데이터는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데이터는 "올해 글로벌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20%, 앞으로 5년 동안은 71% 증가할 것"이라며 "하이브리드차 판매 확대는 아시아와 북미가 주도하겠지만 순수 전기차를 선호하는 유럽에서도 올해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이 11%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예측은 유럽 자동차 판매 집계에서도 실제 확인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 10월 유럽(유럽연합+유럽자유무역연합+영국)에선 29만8390대의 하이브리드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제외)가 판매돼 전년 동기보다 판매량이 32.9% 늘었다. 같은달 전기차(15만8439대)의 전년 대비 판매 증가율은 30.1%로 하이브리드차를 밑돌았다.
지난해 유럽 연간 자동차 판매 시장에서 1년 전과 비교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판매 증가율은 각각 29.3%, 8.5%로 전기차가 하이브리드차보다 3.4배나 더 높았다.
한국과 미국, 유럽은 현대차·기아가 가장 많은 차를 판매하고 있는 3대 자동차 시장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시장 추세를 반영해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기아는 이달 사전계약에 들어간 대형 RV 카니발 부분변경 모델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한 데 이어 가솔린 모델로만 판매해 온 소형 SUV 셀토스도 2년 뒤 완전변경(풀체인지)을 거치며 하이브리드 모델을 함께 출시할 계획을 세웠다.
셀토스 하이브리드가 나오면 기아는 준대형 SUV 모하비를 제외한 모든 내연기관 RV 라인업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을 갖추게 된다.
현대차도 2025년 출시할 준대형 SUV 팰리세이드 2세대 풀체인지 모델(LX3)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현대차는 2년 뒤면 위탁 생산하는 경차 캐스퍼와 신흥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베뉴를 제외한 세단 및 SUV 모든 라인업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을 탑재하게 된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도 기존에 없던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2025년 핵심 파워트레인 공급사 현대트랜시스를 통해 듀얼모터 방식의 차세대 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 양산에 들어갈 것"이라며 "병렬식 구동방식을 구현한 뒤에는 토요타와 같이 후륜 구동모터 도입 가능성이 확대되기 때문에 제네시스 브랜드의 하이브리드 차종 양산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현대차·기아가 전륜 구동을 기본으로하는 것과 달리 제네시스 브랜드는 후륜과 4륜 구동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 조감도. <현대차> |
글로벌 하이브리드차 수요 증가 추세에 발맞춘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 라인업 확대는 전기차 전환기 신차개발 및 설비 투자에도 큰 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기아는 내연기관차를 만들어 온 기존 완성차업체 가운데서는 전기차 부문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직 판매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대당 이익률은 기아가 한자릿수 중반대, 현대차는 한자릿수 초반대에 그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브리드차 생산 과정에서는 전력제어 시스템과 소용량 배터리 등 제조원가 기준 약 3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에 기반해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차보다 500만 원 이상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차 마진은 내연기관차보다도 높다는 뜻이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업체들은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 조짐이 나타나면서 관련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장기적 전기차 수요 확대 추세를 바라보며 계획된 투자를 그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말 연 30만 대 규모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HMGMA) 가동을 시작한다. 최근엔 20만 대 규모의 현대차 울산 전기차전용공장 착공에 들어갔고 지난 4월엔 15만 대 규모 화성 고객 맞춤형 전기차 전용공장 건설에, 5월엔 기아 광명2공장을 전기차전용공장으로 전환하는 공사에도 착수했다.
전기차 신차 출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에만 기아는 EV3와 EV4를, 현대차는 아이오닉7과 캐스퍼 전기차와 아이오닉7을 내놓고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 확대에 나선다.
특히 기아는 2027년까지 15종의 전기차 풀라인업을 구축하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워뒀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역대급 영업이익을 거두며 어느 때보다 이익체력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에 더해 대형 및 고급 차종으로 확장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앞세워 이익체력을 높여나간다면 전기차 전환기 대규모 투자에도 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지웅 연구원은 "2025년 현대차그룹의 하이브리드차 생산량은 90만 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팰리세이드 등 차체가 큰 SUV에서도 하이브리드 트림이 주력으로 확대되고 글로벌 총 생산볼륨 증가가 동반돼 이익률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