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1일(화) 싱가포르 서부 주롱 혁신지구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열린 준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이 최근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준공한 데 이어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공장(HMGMA), 울산 전기차전용공장 등 글로벌 전기차 핵심 거점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는 선제적 제조혁신으로 확보한 수익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현재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압도적 1위 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싱가포르에서 실증한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울산과 미국 조지아주 공장이 완공되는 시기에 전기차 생산 규모와 생산 효율성을 새로운 단계에 올려놓음으로써 테슬라 추격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HMGICS는 지금까지 건설해 온 기존 자동차 공장과는 확연히 다른 임무를 수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은 21일 HMGICS 준공식에 참석한 뒤 'HMGICS가 당장 매출이나 이익에 도움이 되진 않는데도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계기가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HMGICS에서) 돈을 버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이 기술들을 전 세계 현대차그룹 공장에 전파해 다른 공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차를 생산하고 코스트(비용)를 줄일 수 있다면 싱가포르 공장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HMGICS의 역할은 현재의 생산 확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 확보에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HMGICS는 올해 초부터 가동을 시작해 아이오닉5와 그에 기반한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생산하고 있는데 연간 전기차 생산 능력은 3만 대에 불과하다. HMGMA의 10분의1 수준이다.
다만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로보틱스 등 첨단기술을 융합한 제조 시스템을 바탕으로 다차종 소량 생산 시스템을 갖췄고 컨베이어 벨트 대신 각기 다른 모빌리티를 동시에 제작할 수 있는 유연 생산 방식인 '셀(Cell)'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 회장은 싱가포르 HMGICS에서 공정 효율화를 넘어서는 전가차 제조혁신의 실마리를 찾아 이를 기반으로 테슬라 추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는 지난해 전세계에서 131만3887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중국업체를 제외하면 그 뒤를 2위 독일 폭스바겐그룹(57만4708대), 3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39만2244대), 4위 현대차그룹(37만4963대)이 이었다.
중국 완성차업체들은 아직까진 자국에서 내수 중심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의 63.3%가 중국에서 팔렸다.
테슬라는 선제적 전기차 제조혁신에 힘입어 글로벌 전기차시장에서 확고한 1위업체로 올라섰다.
테슬라는 전기차 태동기인 201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 자리를 지켜왔지만 2018년 브랜드 첫 대중차인 모델3 양산을 시작하면서 잦은 불량과 공정상의 오류로 극심한 생산차질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테슬라는 공정 자동화와 배터리 등 부품 수직계열화, 차체를 한 번에 찍어내는 기가프레스 도입 등을 통한 제조혁신에 성공하면서 전기차 생산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
테슬라는 창사 뒤 15년 만인 2021년 첫 연간 흑자를 달성했고 2017년 10만여 대에 그쳤던 테슬라의 연간 글로벌 판매량은 지난해 13배 넘게 뛰었다. 지난해 테슬라의 영업이익률은 16.8%였다.
지난해 각각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거둔 현대차의 연간 영업이익률은 6.9%, 기아는 8.4%로 테슬라의 절반 수준에 못미쳤다.
전기차만 따로보면 기아는 한자릿수 중반대, 현대차는 한자릿수 초반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에 내연기관차를 생산해 온 기존의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대부분 아직 전기차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테슬라는 지난해 말부터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위축되는 조짐을 보이자 가격 인하 경쟁을 공격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런 전략은 빠르게 제조혁신에 성공하며 전기차 수익성을 확보해 둔 바탕에서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시장은 테슬라와 이를 추격하는 기존 완성차업체들로 나뉘어져 있다.
정 회장은 싱가포르에서 실증한 혁신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와 해외 첫 전기차 전용공장인 울산 및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높은 상품성을 갖춘 전기차를 대량생산함으로써 전기차 대중화시대로 진입하는 시기 테슬라 추격의 발판을 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HMGICS에서 개발·실증한 제조 플랫폼을 미국 HMGMA와 한국 울산 전기차전용공장 등 글로벌 전기차 신공장에 단계적으로 도입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3일 울산 북구에 위치한 울산공장에서 열린 울산 EV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현대차> |
특히 현대차그룹은 울산 전기차전용공장을 HMGICS와 함께 앞으로 전동화 시대 50년을 선도하기 위한 혁신의 두 축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회장은 지난 13일 울산 전기차전용공장 기공식에서 "현대차는 모빌리티를 통해 자유로운 이동 경험을 제공하고 인류의 조화로운 공존을 실현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며 "미래 모빌리티로 가는 첫 관문은 전동화인데 이 곳 울산의 EV 전용공장은 전동화 시대 모빌리티 생산의 핵심 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공장을 글로벌 전기차 생산의 허브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울산 전기차전용공장은 약 2조 원을 투입해 2025년에 완공된다. 2026년 1분기부터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초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전기차의 생산을 시작으로 본격 가동을 시작하게 된다.
2024년 말에는 현대차그룹의 첫 글로벌 전기차전용공장인 연산 30만 대 규모의 미국 조지아주 HMGMA가 완공된다.
HMGMA는 전기차 대중화시대가 본격화하는 앞으로 2~3년의 기간 동안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인해 현대차그룹은 미국 판매량 톱5 전기차업체 가운데 홀로 구매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내년 말 HMGMA가 완공되면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생산 물량을 크게 늘리는 것과 동시에 미국에서 1천만 원에 가까운 전기차 구매보조금 혜택을 받을 길이 열리게 된다.
또 2025년 하반기 HMGMA가 위치한 미국 조지아주에는 각각 30만 대 전기차 분의 배터리셀을 양산할 수 있는 SK온,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장공장도 들어선다.
현대차그룹이 초기 단계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출시한 전용전기차 모델들은 상품성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초부터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본격 판매를 시작한 현대차 아이오닉6은 세계 3대 자동차 시상식 가운데 하나인 '2023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됐다. 이에 현대차는 지난해 아이오닉5에 이어 아이오닉6로 세계 올해의 자동차 상을 2연패했다.
기아 EV6는 올 1월 '2023 북미 올해의 차(NACTOY)'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 부문 '북미 올해의 차'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2022 유럽 올해의 차(COTY)'를 수상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세계 3대 자동차 시상식을 모두 휩쓴 것이다.
정 회장은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전기차 364만 대를 생산하고 글로벌 전기차 판매 톱3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와 울산에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핵심 전기차 생산기지가 들어서고 전기차 생산 규모를 본격 확대하는 내년 말까지 싱가포르 HMGICS에서 확보하는 혁신 기술들이 이런 정 회장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디딤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