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2315억 원, 5126억 원, 7500억 원. 현대차의 자율주행 개발 관련 계열사 모셔널의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손실 규모다.
현대차뿐만이 아니다. 알파벳(구글)의 웨이모, GM의 크루즈 역시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 우리나라 돈으로는 무려 수조 원 규모의 적자를 내고 있다.
우버와 구글 출신 자율주행 전문가가 설립한 아르고AI는 폐업하고 말았다. 폴크스바겐과 포드가 더 이상 자율주행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짐 팔리 포드 CEO는 “우리는 완전자율주행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직접 그 기술을 개발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분명 자율주행차는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맞지만 그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너무 많은 인력과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다른 기업들이 기술을 만들어 놓으면 사용료를 내고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아예 포기하지는 않지만 자율주행 관련 인력의 규모를 줄이고 있는 곳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앞에서 언급했던 웨이모다. 웨이모는 올해에만 3번에 걸쳐 200여 명의 인력을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주행 관련 R&D 비용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 역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현대차가 자율주행 관련 투자를 중단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현대차는 계속해서 자율주행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래 자동차의 헤게모니를 현대차가 끌고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차는 내연기관, 전기차 분야에서는 ‘패스트 팔로워’의 위치에 있는 만큼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퍼스트 무버’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원대한 이야기니만큼, 현실적 이유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현대차가 ‘돈’을 버는 방식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차의 2022년 영업이익률은 6.9%다. 100만 원어치 차를 팔면 그 중에 이익은 6만9천 원이라는 뜻이다.
완성차업계는 영업이익률이 굉장히 낮은 업계 가운데 한 곳이다. 제조업 기반이다보니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자율주행 연구는 바로 이 사업구조를 혁신할 수 있는, 그래서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굉장히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완전자율주행 기술의 완성은, 현대차가 제조업을 넘어 ‘플랫폼’ 기업에 한 쪽 발을 걸치는 기업이 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의 선두주자가 바로 테슬라다. 테슬라는 3분기에 어닝쇼크를 냈다. 주가도 급락했다.
그런데 이 주가 급락을 두고 글로벌 투자업체인 RBC의 톰 나라얀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이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테슬라가 전력전자장치, 배터리, 충전기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완전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것이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득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적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율주행 기술에 투자하는 것 역시 이 길을 상당부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의선 회장은 끊임없이 차는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차가 운전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플랫폼이 되기 위해선 자율주행 솔루션은 필수적 요소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을까?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가 발표하는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경쟁력 보고서에서 현대차는 지금까지 한 번도 ‘리더 그룹’에 들었던 적이 없다. 올해 3월 발표한 이 보고서에서도 현대차는 리더그룹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순위는 6위에서 5위로 올라갔다.
현대차보다 위에 있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아까 말했던 웨이모, 크루즈, 이스라엘의 모빌아이, 중국의 바이두 등이다.
이 가운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웨이모는 계속해서 인력을 감축하는 등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바이두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현대차 위에 있는 기업들 가운데 자동차회사가 직접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곳을 보면 GM크루즈 정도다.
물론 이 조사가 테슬라를 항상 꼴찌로 평가하는 등 논란이 많은 보고서이긴 하지만, 현대차의 자율주행 경쟁력이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밀리는 수준은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은 될 수 있다.
현대차가 50%의 지분을 갖고 설립한 모셔널은 현재 미국 차량공유업체 우버, 리프트 등과 손잡고 자율주행 로보택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3년 안으로 의미있는 실적을 내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올해 연말엔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율주행 레벨 4 수준의 로보택시를 출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자율주행 기술 자체가 예상한 것보다 조금 많이 더디게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기업들이 자신들이 예고했던 목표보다 더디게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까 자율주행 기술 직접 개발을 포기한 포드 CEO도 이야기했듯이, 자율주행차가 앞으로 자동차 시장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인공이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현대차는 이 무서운 경쟁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승리를 거둬 세계에 현대차의 완전자율주행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게 될까? 포드에서 만든 자율주행차에 탑승했는데, 모니터에 ‘HYUNDAI MOTORS’라는 로고가 뜨는 날을 상상해본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