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으로 출근하는 직원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취업준비생들에게 한때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삼성전자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카카오와 두나무 등 IT기업들의 직원 평균연봉이 삼성전자를 훌쩍 넘어선 가운데 SK하이닉스 등 경쟁기업도 큰 폭의 임금인상을 단행하면서 연차가 낮은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언제든 이직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2030세대는 ‘평생 직장’이라는 의식이 옅고 ‘몸값’을 올리려면 기회가 왔을 때 이직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어 삼성전자는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사내 각 부문장들에게 ‘5월 초까지 급작스럽게 근태 변경이나 연차를 통보하는 5년차 미만 인력들을 관심 있게 챙겨봐 달라’는 내용의 공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저연차 직원들이 SK하이닉스가 4월21일부터 5월 초까지 진행하는 5년 미만 경력자를 채용하는 ‘주니어탤런트’ 전형에 지원할 것으로 알려지자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SK하이닉스의 근무환경, 출퇴근 방식, 처우·복지 수준을 묻는 질문과 이에 관한 SK하이닉스 직원의 답변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대한민국 1등 기업'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4월1일에는 삼성전자의 한 주니어레벨 직원이 타운홀 미팅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이제 ‘2030’에게 삼성은 1순위가 아닙니다. 인정하십니까?”라고 질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이직을 고민하는 이유는 연봉 등 대우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2021년 대졸 신입사원 초임을 5040만 원으로 올려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삼성전자 신입사원 초봉은 4800만 원이다.
게다가 규모가 훨씬 작은 DB하이텍도 올해 임직원 초임 연봉을 4200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14.29% 올리며 삼성전자와 같은 수준으로 맞췄다.
IT업계 전체로 시선을 돌리면 삼성전자보다 연봉을 많이 주는 곳이 더 많다.
올해 들어 네이버는 10%, 카카오가 15%가량의 연봉을 올려주기로 결정했다. 카카오의 평균연봉은 이미 삼성전자는 넘어섰다. 또 배달의민족과 당근마켓은 대졸 개발자에게 6000만 원 이상의 초봉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게다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2021년 직원 1명당 평균 급여가 3억9294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삼성전자 직원 평균 급여인 1억4400만 원보다 3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IT업계의 높은 연봉인상률은 저연차인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삼성전자 직원들도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협의회 근로자 위원들은 2022년 임금 기본인상률을 역대 최고 수준인 15.72%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노사협의회가 합의한 기본인상률 4.5%(성과인상률 3.0% 포함하면 7.5%)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최근 반도체업계의 인력 부족과 이탈 등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도 노사협의회의 요구를 아예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해외 반도체기업들에서도 인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 TSMC는 직원이 자사주를 구매하는 경우 약 15%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방안을 내놓고 5월 이사회에서 통과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987년 TSMC가 창립한 이래 처음으로 직원의 자사주 구매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기업들이 TSMC 반도체 인력을 지속해서 빼내가자 이를 막기 위한 대응책 가운데 하나로 해석되고 있다. TSMC는 회사 규모나 매출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TSMC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 임직원의 임금구조의 전면적으로 개편해 급여를 약 20% 인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추세에 발맞춰 삼성전자가 무작정 임금 수준을 높일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미국의 역대급 유동성 공급과 전자기기 수요 급증으로 찾아온 반도체 호황기가 끝나면 지금의 임금인상분이 향후 실적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2021년 지출한 인건비는 약 15조8천억 원으로 2020년보다 18.4% 증가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최근 인건비, 물류비, 제조비용 등 각종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2023년 손익 전망을 하향 조정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2022년 18.2%에서 2023년 15.6%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