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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 |
잔치는 조촐했으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큰 폭의 물갈이도, 매서운 칼바람도 없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영복귀 후 첫 정기인사를 실시했다.
최 회장은 올해 인사에서 인적 쇄신보다 조직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
승진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소폭 늘었다. 주요 계열사 대표들도 대부분 유임됐다.
하지만 최 회장은 40대 대표이사를 발탁하는 등 ‘젊은 SK’를 위한 세대교체 의지도 분명히 나타냈다.
경영공백 이후 그룹 위기상황을 잘 막아낸 데 대한 ‘보은’의 뜻도 이번 인사에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룹 컨트롤타원 역할을 수행해온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앞으로 관리형에서 전략기획형으로 역할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친정체제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 ‘보은’과 ‘세대교체’
16일 발표된 SK그룹 정기인사에서 모두 137명이 승진했다. 이 가운데 신규 임원은 82명이다. 지난해 전체 승진자 수 117명과 비교하면 20명 더 늘어난 것이다.
다만 신규 임원은 지난해 87명에서 5명이 줄었다.
SK그룹 관계자는 “애초 예상보다 승진규모 커진 것은 올해 실적이 전년보다 좋아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한 것”이라며 “어려운 경제환경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신규 임원은 다소 줄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주력 계열사 대표들도 대부분 유임했다. 2년이 넘는 경영공백기를 잘 넘겨준 데 대해 은혜를 갚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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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0월30일 제주도에서 열린 최고경영자 세미나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정철길 SKD이노베이션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사상 최대 적자를 냈던 데서 올해 흑자로 돌려놓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정 사장은 방산비리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이번 인사를 앞두고 퇴임설이 나돌기도 했다. 최 회장은 정 사장에 힘을 실어 경영능력뿐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무혐의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김영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김 위원장의 승진은 경영공백기를 잘 메워준 데 대한 포상으로 해석된다.
이밖에 주요 계열사들에서도 장동현 SK텔레콤 사장과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조대식 SK 사장이 모두 유임됐다.
문종훈 SK네트웍스 사장의 경우 지난달 면세점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한 데 대해 문책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으나 자리를 지켰다. 일회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최 회장의 인사스타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문 사장은 장동현, 정철길, 박정호 사장과 함께 최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CEO 4인방으로 불린다.
최 회장은 올해 인사에서 SK그룹 관계사에 40대 대표이사를 발탁해 세대교체에 신호탄을 쐈다. 1971년 생인 송진화 SK이노베이션 전무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대표 자리를 꿰찼다.
SK그룹 관계자는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연차에 관계 없이 인재를 과감히 발탁했다”고 말했다.
송 전무 외에도 승진자 가운데 40대 비중은 지난해 48%에서 올해 59%로 크게 늘어났다.
계열사별 임원 승진자만 놓고 보면 SK하이닉스가 올해도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SK하이닉스는 송현종 마케팅부문장 등 6명의 승진자, 김성한 SCM본부장 보좌임원 13명 신규 선임 등 승진 규모가 가장 컸다. 나머지 계열사들은 엇비슷한 수준에서 승진자를 배출했다.
◆ 수펙스추구협의회 통해 친정체제 강화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를 기존 6개 위원회와 1개 특별위원회를 재편해 7개 위원회 체제로 변화를 꾀했다. 전략위원회와 ICT기술·성장특별위원회를 합쳐 에너지·화학위원회와 ICT위원회 등 2개로 나눴다.
SK그룹 관계자는 “기능을 더 세분화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SK그룹은 대형 이슈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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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
상반기 SK와 SKC&C를 합병해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마무리했고 최 회장의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하반기 최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고 풀려나 경영에 복귀했다.
최 회장은 2년7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통해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역할과 중요성을 크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말 제주에서 열린 ‘CEO 합숙세미나’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 중심의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높이 평가했다. 이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이끌어온 김창근 의장이 이번 인사에서 유임한 데서도 증명됐다.
최 회장은 앞으로도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직접 이끌며 경영전반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자율성을 부여하되 책임경영을 강하게 요구하겠다는 뜻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최 회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위기관리에 주력했다면 그룹의 성장동력을 적극 발굴하는 전략기획형 조직으로 탈바꿈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