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이 금호산업에게 금호리조트 매각을 동의없이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공문을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아직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이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2500억 원 규모의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10일 법조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이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해야 향후 벌어질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은 실제로 종결됐지만 이와 상관없이 HDC현대산업개발은 법적으로 계약이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거래가 무산된 책임을 금호산업에게 넘길 수 있다"고 바라봤다.
HDC현대산업개발이 5일 금호산업에게 금호리조트 등 아시아나항공 주요 자산을 동의 없이 매각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공문 발송은 계약상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금호산업에게 통지했다는 근거로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쓰일 수 있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정 회장은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의 거래종결을 선언하기 전부터 이런 소송 전략을 준비했을 수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금호산업이 9월11일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의 거래 종결을 선언한 이후 공식적으로 인수를 포기한다고 발표한 적이 없다.
정 회장도 대한축구협회장으로서 여러 공식행사에 참여했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9월15일 입장문에서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일방적으로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 해지를 통지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금호산업의 계약 해제 및 계약금 질권 해지에 필요한 절차 이행통지에 법적 차원에서 검토한 뒤 대응하겠다”고만 말했다.
금호산업이 인수계약 무산으로 계약을 해제하겠다고 통지했지만 정 회장은 이에 합의하지 않은 것인데 이는 법정에서 정 회장이 계약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는 근거로 활용될 수도 있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이 무산된 책임을 금호산업에게 넘길 수 있다면 계약금으로 지급한 2500억 원을 돌려받을 길이 생겨난다.
계약금 반환소송의 핵심은 누가 계약이 무산되는 데 더 큰 책임이 있느냐가 될 수 밖에 없다.
HDC현대산업개발과 금호산업이 서로에게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계약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은 적게나마 HDC현대산업개발에게 유리한 부분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한화그룹은 2008년 3150억 원 규모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계약금 반환소송에서 계약 무산에 책임이 적다는 점을 입증해 계약금 1951억 원을 KDB산업은행으로부터 돌려받았다.
정 회장도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계약금 반환소송을 끌고 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과 2조5천억 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계약금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이행보증금 2500억 원을 냈다.
다만 정 회장은 계약금 반환소송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면서 향후 정부를 대신하는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한 번 더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는 점이 부담이 될 수는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이 7월 초 정 회장을 따로 만나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하는 등 정부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성사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HDC그룹의 본업인 부동산 개발, 건설사업 등은 각종 인허가가 반드시 필요한 사업으로 국토교통부 등의 협력을 얻지 않고는 사업 진행이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향후 계약금 반환소승 진행 등과 관련해 말을 아꼈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9월 입장문 이상의 내용을 밝힐 것이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감병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