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에 상응하는 대북제재의 완화 수준을 놓고 의견 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북한과 미국 관계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여파로 한동안 교착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이 대북제재의 전면적 완화를 요구했기에 회담이 결렬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를 풀어줄 수 있는 기준으로 북한이 ‘완전한 비가역적 비핵화(CVID)’를 해야 한다는 태도를 지키고 있다.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조건으로 대북제재의 완화를 촉구한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의견 차이가 처음부터 상당히 컸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실무대표단의 합의보다 높은 수준의 비핵화를 촉구하면서 김 위원장도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수위를 높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원했다면 합의문에 100% 서명할 수 있었지만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며 합의문이 마련돼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북미 실무대표단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와 남북 경제협력을 맞바꾸는 ‘스몰딜’에 잠정 합의했다고 추정돼 왔다. 이 내용이 합의문에 담겼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판을 뒤집은 셈이 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상황에 미국 내부의 사정이 반영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북제재의 완화를 반대하는 미국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은 데다 트럼프 대통령도 정치적 공세에 휩싸여 있다.
미국 하원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28일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제재를 독자적으로 완화할 수 없는 내용의 법안을 상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헨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비리를 증언하면서 여론이 크게 들끓고 있기도 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정치적 위기에 놓인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못 내면 회담 결렬이 차라리 미국 내부의 관심을 끌어오는 데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에서 진전을 보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질문받자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김 위원장도 대북제재의 완화기준으로 ‘완전한 비가역적 비핵화’가 확고해지면서 협상을 진행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비가역적 비핵화의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을 비롯해 우라늄 고농축시설과 핵미사일의 폐기, 핵탄두 무기체계의 목록 작성과 신고 등을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보유한 핵자산의 정보 전반을 미국에 모두 넘기게 되는 만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상당한 기대를 보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북한 내부 분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김영수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이 예상했던 수준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훨씬 강도 높은 기준을 제재 완화의 조건으로 공식화한 셈”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3차 북미 정상회담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비가역적 비핵화’가 이뤄져야 대북제재를 완화할 것인지 질문받자 “우리도 양보할 의향이 있고 한국, 중국, 일본도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며 협상을 진행할 여지를 열어놓았다.
북미 외교관계에서 정상들의 합의가 실무 논의로 이어지는 ‘탑다운’ 방식이 한계로 꼽히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중국, 일본 등이 참여하는 다자외교 방식으로 비핵화 협상방식이 재편될 가능성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