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부름을 받고 1988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30년 가까운 세월을 오로지 롯데그룹의 성장과 국가 경제를 위해, 그리고 좋은 경영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7일 오후 2시10분부터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7월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
신 회장은 그동안 열린 공판에서 여러 차례 피고인 진술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작정한 듯 15분 동안 준비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신 회장이 구속된 지 6개월을 꼬박 채우고도 닷새를 넘겼다.
유례 없는 폭염이 이어진 데다 수감생활이 길어지면서 신 회장의 체중이 10kg가량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피고인 진술을 위해 증인석을 향하는 신 회장의 양복이 커 보였다.
신 회장은 그동안 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억울함을 강하게 호소했다.
신 회장은 “어느 누구든 사업을 하면 문제라는 건 다 있기 마련”이라며 “롯데그룹도 52년 동안 문제가 없던 해는 한 해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문제가 된 2015년 상반기부터 돌이켜보면 경영권 분쟁, 복합쇼핑몰 영업 규제, 가습기살균제, 롯데홈쇼핑 재승인, 영등포백화점 재승인, 롯데월드타워 수족관 누수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며 “면세점 재승인 문제는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고 덧붙였다.
굳이 면세점 재승인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줄 이유가 없음을 항변한 것이다.
신 회장은 애널리스트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경영자로서 개인적 소신도 피력했다.
그는 “수십 만 근로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경영자로서 작은 이익에 얽매여 법적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무리한 청탁을 한다든지 불법적 방법으로 경영한다든지 하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단기적 성장보다 정도경영을 통한 장기적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신 회장은 젊은 시절 롯데그룹 경영에 나서기 전까지 일본 노무라증권 영국지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한 경험이 있다.
신 회장은 마지막으로 “재계 5위 롯데그룹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본연의 일을 못한 지 6개월 이상 지났다”며 “롯데그룹은 최근 몇 년 동안 일자리를 가장 많이 제공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하반기에는 신규 채용계획이나 투자계획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신 회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백창훈 김앤장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판결이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정부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 지를 결정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들 입장에서 정부의 요청을 받으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신동빈 회장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기업들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변호인과 피고인의 주장은 모두 그동안 해왔던 주장들로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며 짧게 변론을 마쳤다.
재판부는 애초 29일 결심공판을 열고 롯데그룹 경영비리 재판과 신 회장의 뇌물공여 재판을 모두 끝내려 했지만 신 회장의 혐의가 워낙 방대한 만큼 22일 한 차례 더 변론을 진행하기로 했다.
선고는 10월 초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