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에 화답하고 재계 5위 그룹으로 존재감도 지켜야 하지만 자칫 ‘오얏나무 아래서 관을 고친다’는 달갑지 않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한화그룹, 신세계그룹이 최근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한화그룹은 12일 미래 성장동력과 핵심사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5년 동안 22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로 최근 3년의 평균 투자금액보다 40%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다.
이에 앞서 재계 1위 삼성그룹이 180조 원, 2위 현대차그룹이 23조 원, 3위 SK그룹이 80조 원, 4위 LG그룹이 19조 원 정도의 투자계획을 각각 내놓았다. 이들 4대 그룹이 내놓은 투자 규모는 모두 합쳐 300조 원이 넘는다.
재계 5위 롯데그룹은 이런 분위기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재판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려해 대규모 투자는커녕 대외활동까지 줄이며 몸을 사리고 있다.
이런 행보는 유통업계 라이벌로 꼽히는 신세계그룹과도 대조된다.
신세계그룹도 정용진 부회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만난 직후 앞으로 3년 동안 연 평균 3조 원을 투자하고 매년 1만 명 이상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지속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통업의 고용유발 효과는 제조업의 3배에 이른다. 유통업은 소비유발 효과도 다른 산업보다 큰 편이다. 이런 만큼 그동안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은 고용계획 등을 가장 적극적으로 내놓았지만 롯데그룹은 하반기 채용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다른 그룹처럼 투자계획을 내놓고 싶어도 자칫 역풍이 불까 고민이 깊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그동안 총수가 수감 상태거나 재판을 받고 있는 그룹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해석된 적이 많았다. 자칫 ‘거래’로 보일 수 있는 탓이다.
삼성그룹이 무려 180조 원이라는 투자계획을 밝힌 점을 놓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연결해 보는 시각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2015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지 사흘 만에 2024년까지 모두 46조 원을 반도체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놓고 특별사면에 화답하는 차원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CJ그룹도 이재현 회장의 사면을 대가로 박근혜 정부의 ‘K-컬처밸리 프로젝트’에 1조4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의혹을 받은 적이 있다.
신 회장은 17일과 29일에 항소심 공판을 남겨놓고 있다. 보석 여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신 회장은 6월 보석을 청구했으나 재판부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현재 투자계획을 놓고 어떤 말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른 그룹에서 투자계획을 내놓는 상황에서 없다고도 할 수도 없고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내놓겠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3일 신 회장은 수감생활 6개월을 꽉 채웠다. 신 회장은 2월13일 뇌물공여 혐의로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