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순 한국마사회장이 취임 이후 첫 출근을 하며 찾은 곳은 노동조합 사무실이었다.
말 관리사의 잇따른 자살로 위상이 땅에 떨어진 마사회의 체질 개선이라는 과제를 안고 한국마사회장에 취임한 그에게 노사문제는 그만큼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김 회장은 취임식에서 “대한민국 초대 노동위원장 보좌관으로 일한 경력을 통해 노사관계에 남다른 철학을 지니고 있다. 실천으로 보여드릴 테니 지켜봐 달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11차례에 걸친 노사전문가협의체의 정규직 전환 논의에도 한국마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5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는 1500여 명의 파견, 용역 직원의 전환 방식을 놓고 한국마사회와 노조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정규직 전환 방식에 관한 문제는 6월 초 한국마사회가 노조와 상의 없이 용역회사에 정보 시스템 통합 유지관리 용역직원과 문화센터 직원 100여 명을 2020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협조공문을 보내면서 촉발됐다.
노사는 14일 회의를 열고 이를 논의했으나 사측은 파견직원과 용역직원 전체를 자회사를 통해 고용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1500여 명의 노동자 대부분이 근속연수 10년에서 20년 이상 된 직원인데 자회사를 통해 고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국마사회의 직접고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직원이 자회사를 통해 고용되면 용역노동자로 근무하는 것과 비교해 노동환경에 차이가 없다는 것인데 임금 수준이나 고용 안정성 등에서 불안 요소가 크고 업무 효율성 개선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마사회의 업무 시스템은 불법 파견 문제로 정규직 직원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직접 지시를 내릴 수 없게 돼 있다.
원청 직원이 하청기업에게 지시내용을 전달하고 하청 관리자가 다시 원청에 파견된 노동자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이뤄지고 있는데 용역직원과 파견직원들이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되더라도 상황은 동일하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의 핵심이 처우 개선과 노동환경의 계층화 해소, 업무 비효율성 완화 등인데 자회사를 통해 고용되면 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며 “사측과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어 논의가 장기화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다른 공기업과 비교해 직원 구성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자산 규모 2조5200억 원으로 주요 공기업 가운데 덩치가 열두 번째로 큰데 2018년 1분기 기준 정규직 직원 수는 947명에 그친다.
한국마사회와 자산 규모가 비슷한 강원랜드가 2018년 1분기 기준으로 3660명을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마사회의 정규직 노동자는 상당히 적은 수준이다.
한국마사회는 2017년 비정규직 노동자 5천여 명을 무더기로 무기계약직 전환하며 ‘꼼수 정규직화’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이양호 전 한국마사회장이 물러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한국마사회장에 취임했다.
문재인 정부가 주요 공공기관장의 공석을 채우는데 짧게는 한 달 이상, 길게는 6개월가량 걸린 점을 보면 그만큼 김 회장에게 거는 한국마사회 혁신의 의지가 컸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 회장은 취임식에서 노사문제를 “실천으로 보여주겠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마사회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 상황만 놓고 보면 의지는 높지만 실천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