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로 투명성을 강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사회 중심체제는 오너일가의 경영공백과 삼성그룹 컨트롤타워 부재 등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도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수준으로 높이는 효과를 줄 수 있다.
▲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왼쪽)과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그동안 오너와 대표이사의 강력한 권한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를 자리잡도록 하는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연말인사에서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사임했지만 이사회 의장은 계속 맡기로 했고 삼성전자에서도
이상훈 사장이 경영지원실장 보직에서 내려와 이사회 의장에 오른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삼성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맏형’격 계열사인 만큼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역할을 분리하는 경영체제 변화에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2016년부터 일제히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한 만큼 이런 변화가 삼성생명 등 다른 계열사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삼성전기의 경우 이미 지난해부터 삼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처음으로 대표이사 대신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가장 먼저 실험에 나섰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주요 경영사항은 모두 이사회 의결을 거쳤던 만큼 기존 의사결정체제와 큰 변화는 없다”면서도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에서는 이런 변화 뒤 이사회 역할과 권한이 특히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 사장과 이 사장이 모두 오너일가 측근으로 그룹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히기 때문이다.
최 사장과 이 사장은 3월 주주총회에서 의장으로 정식 선임될 경우 주요 의사결정과 전략수립 등에 역할을 강화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공백을 만회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모두 대대적 세대교체 인사를 실시한 상황에서 적응기간을 거치는 사이 안정적으로 사업운영을 이끌어가는 원로경영인 역할도 맡게 될 공산이 크다.
중장기적으로 대표이사는 각자 담당하는 사업부문의 실질적 운영에, 이사회 의장은 투자와 인수합병 등 주요 결정과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수립에 집중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질 수 있다.
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오너공백 위기에서 사업부문장이 인수합병 등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기 사실상 쉽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사회의 역할과 권한 강화로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도 있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대부분 이사회 의장이 강력한 권한으로 이사회와 주주 의견에 따라 회사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고 대표이사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삼성그룹 계열사도 최근 이런 변화를 추진하며 글로벌 수준의 이사회 독립성 강화에 나서고 있다.
▲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사옥이 모여있는 서울 서초구 삼성타운. |
이사회의 역할 강화는 미래전략실의 해체 뒤 이어지는 삼성그룹 컨트롤타워 공백 영향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요 계열사 이사회 의장들이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방식으로 그룹 차원의 논의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3월 주주총회에서 외국인과 여성 사외이사 선임 등으로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변화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전자계열사를 총괄하는 시너지조직 구축에도 발빠르게 나섰다. 이와 같이 삼성생명은 금융계열사를, 삼성물산은 다른 계열사를 수직적으로 총괄하는 중심적 계열사로 자리잡을 수 있다.
결국 삼성그룹에 이사회 의장이 총괄하는 주요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를 총괄하며 안정적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및 운영체계를 갖추는 방식으로 ‘관리의 삼성’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전자전문매체 안드로이드헤드라인은 지난해 10월 보도에서 “리더십 공백 위기의 삼성전자에서 이사회의 힘이 더욱 강화되는 변화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런 관측이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