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7-11-13 16: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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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신규수주를 따내는 데 고전하고 있는 이유가 발주량 감소 탓인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13일 “국내 대형건설사는 해외에서 애매모호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며 “한국 건설사의 경쟁력은 가격도, 기술도 아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인데 가격경쟁력이 높은 중국과 기술경쟁력이 높은 유럽에 밀리고 있다”고 바라봤다.
▲ 국내 대형건설사들이 중국의 가격경쟁력과 유럽의 기술경쟁력에 밀려 해외 신규수주에 고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대형건설사의 글로벌 경쟁력은 세계 6위로 평가된다. 시공경쟁력은 2015년 5위에서 지난해 4위까지 올랐고 설계경쟁력은 2014년 16위에서 지난해 8위로 크게 상승했다.
한국 대형건설사의 글로벌 경쟁력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만 가격과 기술 어느 쪽에서도 우위를 확보하고 있지 못해 해외 신규수주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송 연구원은 봤다.
해외 건설전문지 ENR이 집계하는 글로벌 매출 상위 250개 건설사를 놓고 볼 때 국내 대형건설사의 해외매출 점유율은 지난해 7.3%를 보였다. 2015년보다 점유율이 1%포인트 줄었다.
반면 중국건설사의 해외매출 점유율은 2015년 19.3%에서 지난해 21.1%까지 올랐다. 유럽 건설사의 해외매출 점유율도 같은 기간 43.6%에서 45%까지 증가했다.
송 연구원은 “중국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시장을 장악했고 유럽은 유럽과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어진 수주전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로이터와 아랍뉴스 등 해외언론에 따르면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된 가스플랜트 입찰에서 해외기업에 밀려 수주에 고배를 마신 것으로 파악됐다.
로이터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인 아람코가 7일 유럽과 미국,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회사들과 45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고 10일 보도했다.
스페인 엔지니어링기업 테크니카스리유니다스(TR)이 하위야-하라드 가스압축설비 건설공사 계약을 따냈으며 이탈리아 엔지니어링기업 사이펨이 7억 달러 규모의 하위야 가스처리용량 확장공사를 수주했다.
중국 국영석유공사(CNPC)의 자회사인 차이나페트롤리엄파이프라인(CPP)은 하라드 유전에서 채취한 가스를 하위야 가공공장까지 공급하기 위한 가스파이프라인 건설공사를 따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이 사업의 입찰에 참여했지만 경쟁기업들보다 10~20% 높은 수준의 응찰가격을 제시해 사업을 담당할 시공사에 선정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대형건설사들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단순도급사업에서 벗어나 시공자가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사업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사업체질을 바꾸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송 연구원은 “최근 발주처의 동향을 볼 때 건설사의 금융조달 능력이 수주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 대형건설사가 해외에서 단순도급사업으로 성장해 온 까닭에 관련 경험이나 역량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동 발주처들은 저유가에 따라 재정상황이 악화하자 건설사에게 직접 공사비를 조달해 오라고 요구하는 시공자 금융주선형(EPCF) 사업으로 플랜트를 발주하고 있다. 건설사가 공장을 건설한 뒤 수십년 동안 공장을 운영해 수입을 확보하는 투자개발형 사업으로도 발주가 이뤄지고 있다.
2000년 이후 국내 대형건설사들의 해외 신규수주 금액을 살펴보면 단순도급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2.3%로 높지만 투자개발형 사업의 비중은 3.4%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일본과 중국정부는 건설사들의 해외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사업역량을 확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KDB산업은행을 제외한 국내 금융기관의 금융지원 역량은 글로벌 100위권 밖으로 밀려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