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비 7천만 원’으로 시작된 재건축사업 과열 수주전이 경찰수사로 확산되는 등 건설업계가 시끄럽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이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사업 수주를 따내기 위해 이런 파격적 카드를 꺼내든 이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역대 최대규모의 재건축사업을 따냈지만 부메랑이 되어 현대건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건설업계의 재건축 수주비리를 놓고 경찰이 내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결과에 따라 건설사들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토부는 9월 과도한 이사비 제공이 도시정비법에 어긋난다며 현대건설에 시정명령을 내렸는데 논란이 커지면서 경찰수사로 번졌다.
이사비 7천만 원이라는 통 큰 승부수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 셈이다.
7천만 원이면 모두 합쳐 무려 2천억 원에 가까운 돈을 조합원들에게 주겠다는 얘기다.
국토부의 제재로 지급이 무산되긴 했으나 그대로 진행됐다면 수익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 사업 공사비는 2조6363억 원인데 영업이익률 8~9% 수준이라고 해도 이사비에 영업비를 합치면 남을 이익이 없다.
정 사장이 CEO를 맡은 이후 수주심의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등 수익중심의 경영을 펼쳐왔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뜻밖의 행보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의사결정을 했을 것이라는 말도 건설업계에 나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7천만 원은 오너일가도 아닌 정 사장이 대뜸 내놓기는 힘든 대범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이 아파트 브랜드인 힐스테이트를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에게 사실상 넘겨주면서 강남에 새 브랜드인 ‘디에이치’를 강남에 심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고 이런 현실성 필요성 때문에 이익이 나지 않아도 좋다는 그룹 차원의 판단이 이루졌다는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4년부터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주택사업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건설업계에서는 힐스테이트 브랜드는 현대건설이 현대엔지니어링에 사실상 넘겨줬다고 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자금적 측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꼽힌다.
이렇게 되면서 현대건설은 주택사업에서 외형을 확장하기 위해 새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는 부담이 더욱 커졌고 결국 ‘이사비 7천만 원’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증권가는 현대건설이 ‘강남권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이번 수주를 따낸 만큼 2년 전 내놓은 아파트브랜드 디에이치가 인지도를 빠르게 높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잡음이 많아 경과를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현대건설은 개포주공3단지, 반포삼호가든3차, 방배5구역 등에서 디에이치 브랜드로 수주하는 데 잇따라 성공했다”며 “서초구 최대 아파트단지가 될 반포주공 1단지 시공으로 강남권 주택시장에서 입지도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정 사장은 내년 3월이면 임기가 끝나는데 이번 수주전의 결과는 정 사장의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건축사업 수주전의 성공이 부각된다면 연임에 긍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자칫 재건축사업 비리수사로 현대건설로 발목이 잡힐 경우 정 사장에게 부정적 결과를 안겨줄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