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제3회의장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가 인사청문회 이틀째를 맞으면서 그동안 내린 판결이 주목받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진보적 판사들의 ‘대부’로 불린다.
그는 5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펴낸 ‘인권판례 평석’ 추천사에서 “법률가들은 법률지식 이전에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의 판결들도 이런 발언을 뒷받침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난해 6월 삼성에버랜드가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을 해고한 것을 놓고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해고한 이유가 사실상 노조활동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5년 서울고법 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합법노조 지위를 잠정적으로 유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전교조는 노조가 아니다’라는 정부의 통보처분 효력을 사실상 인정하고 파기환송했지만 김 후보자는 대법원의 결정을 다시 뒤집었다.
군부대에서 여성인권의 신장에 기여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2014년 김 후보자는 남자 군무원이 군부대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여자직원에게 음란 동영상을 보여준 사건이 성희롱에 해당돼 징계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판결문에서 “남성 중심적 가치관과 질서가 지배하는 군부대에서 여성이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2011년엔 ‘오송회’ 사건 피해자와 가족에게 국가가 150억 원가량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오송회 사건은 5공화국 당시 전직, 현직 교사들이 4·19 기념행사를 치르고 시국토론을 하며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낭송했다고 정부가 이적단체로 조작한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영장없이 강제연행돼 수사 받으면서 고문과 협박으로 후유증에 시달렸다.
2002년 주한미군이 교통사고를 내 피해자가 식물인간이 된 사건에서 가해자인 미군이 혐의를 부인하며 손해배상을 지체하자 실형을 선고했다. 종전 판례들은 주한미군에 비교적 관대한 처벌을 해왔는데 이런 관행을 깬 엄격한 판결이라고 법조계는 바라본다.
김 후보자는 진보성향 판사들의 연구단체로 분류되는 ‘우리법 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학술대회도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함께 처음으로 개최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5년 ‘정리해고의 실시와 쟁의행위의 대상’이라는 판례평석에서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도 정당한 쟁의행위라는 입장을 밝힌 사실도 주목된다. 판례평석은 다른 판결을 평가, 분석하는 것으로 주로 대법원 판결을 대상으로 한다.
대법원은 그동안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조합원들이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수차례 판결했다. ‘구조조정’ 문제는 단체교섭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김 후보자는 구조조정 문제도 단체교섭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
김 후보자는 12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념적 성향을 문제삼자 “그동안 처리한 사건 중 진보적이라고 평가받은 사건들도 있지만 보수적이라고 평가받은 사건도 상당히 많다”며 “저를 진보 또는 보수, 좌우의 이분법적인 잣대로 규정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김 후보자는 육아휴직 도중 딸을 어머니에게 맡긴 채 남편과 8개월 동안 멕시코에 체류한 직원에게 지급된 급여를 2심 재판에서 부정수급으로 판단했다. 국외에서 경제적 지원만 한 것을 두고 실질적 양육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가 “육아휴직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장려 및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목적으로 한다”며 이 직원의 육아휴직급여 제한 및 반환, 추가징수 처분을 취소한 것과 대비됐다.
이를 놓고 대법원은 “육아휴직 수급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이를 부정수급으로 볼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 기간 지급된 급여를 반환징수 할 수는 있지만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김 후보자는 1991년 실종된 ‘개구리 소년’의 부모들이 경찰의 위법한 수사로 유골이 11년이 지나서야 발견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2002년 손해배상 소송을 내자 이를 기각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경찰이 4차례나 수사본부를 꾸린 만큼 형식적 수색만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김 후보자는 법원행정처를 거치지 않았다. 임관 이래 31년 동안 재판을 쉰 적이 없는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