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텍사스주를 비롯한 미국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의 주정부 차원에서 전력 수요에 '허수'를 가려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한국의 전력수급 계획에도 중요한 선례로 꼽힌다. 구글의 미국 텍사스주 데이터센터 홍보용 사진. <구글> |
[비즈니스포스트] 텍사스를 비롯한 미국 여러 주정부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중장기 전력 수요와 관련해 진위 여부를 엄격하게 가리며 과잉 투자를 방지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데이터센터 투자 성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텍사스주의 사례가 교훈을 남길 수 있다.
1일(현지시각) 로이터는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에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며 전력 공급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가 종합한 전력회사 및 전력망 데이터를 보면 미국 중서부와 남부 지역에서 초대형 전력 사용자들이 요청한 에너지 공급량은 700기가와트(GW)를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대형 원자력 발전소 1기의 전력 생산량이 1GW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발생하는 수요로 파악됐다.
로이터는 결국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전력 선점 경쟁이 과열되면서 프로젝트를 실제로 추진할 역량이 없는 기업들이 제출한 수요가 반영돼 숫자를 부풀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텍사스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등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미국 주요 지역은 결국 주 정부 차원에서 현실성 있는 전력 수요량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대규모 전력 수요처가 요청한 공급량은 텍사스주에서만 474GW로 2023년 48GW와 비교해 열 배 가깝게 늘었다.
텍사스주는 결국 에너지 수요를 모두 충족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데이터센터에 신규 전력망 연결을 중단하고 사업 계획을 조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전력 공급을 요청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최종 소유자를 밝히도록 하고 자체 전력 발전이나 산업용수 사용 계획도 공개하도록 하는 방침이 포함됐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프로젝트에서 제출한 전력 수요가 결국 전력망에 과잉 투자로 이어지는 사례를 막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로이터는 미국의 다른 주들도 비슷한 대응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25메가와트(MW)이상의 전력을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인허가 요건을 강화하고 사업 계획을 더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하는 데이터센터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 ▲ 박우영 에너지경제연구원(KEEI) 에너지전환정책연구본부장이 8월2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 4차 토론회에서 전력 공급 계획과 관련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로이터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실은 이런 조치가 시행된 뒤 100개 이상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가운데 20곳만이 실제로 허가 신청을 냈다고 전했다.
전력 수요의 상당수가 허수에 가까울 수 있다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리는 셈이다.
로이터는 “각 주정부 차원에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면밀히 심사하기 시작하면 상당한 규모의 전력 수요가 증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소비자단체 퍼블릭시티즌은 전력 회사들이 데이터센터의 수요를 과도하게 산정해 관련 인프라를 무리하게 증설한다면 결국 일반 시민들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따라서 텍사스주와 같이 산업 전반에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지방정부의 사례는 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공장 증설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전력수급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도 교훈을 남긴다.
한국 정부는 현재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수요를 고려해 2040년 에너지 수요 전망치를 최대 165GW로 기존보다 약 20% 높여 내놓았다.
하지만 한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요를 가정해 전력망에 과잉 투자가 이뤄진다면 국민 전체가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 싱크탱크 넥스트는 1일 보고서를 내고 “현재 발표된 국내 AI 데이터센터 계획은 20GW 용량에 이르지만 실제 계약이 체결됐거나 수요처가 확인된 사례는 2.5GW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자금 조달이나 임차 계약이 확정되지 않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전력계통 접속이나 발전 설비를 선점한 뒤 사업이 중단되면 관련 인프라 투자 효과는 회수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규모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의 실수요를 사전에 철저하게 검증하고 방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와 펜실베이니아 등 지역에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 절차를 도입하는 사례는 결국 한국의 중장기 전력수급 계획 수립에도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
로이터는 “전력망에 과소 투자가 이뤄지면 산업 경쟁력과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지만 ‘유령 수요’를 철저하게 걸러내는 일이 전력 공급 계획에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고 결론지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