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6-08-28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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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무게중심을 많은 기업에 소액을 나눠주는 방식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골라 장기간 집중 지원하는 쪽으로 옮긴다.
2027년부터 중소기업 지원사업 심사에 매출·고용 증가율뿐 아니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성장잠재력 평가를 도입하고 기존 사업 구조조정으로 확보한 재원도 성과가 높은 사업과 신성장기업 육성에 집중해 효율성을 높인다.
▲ 박용순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정책실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재정운용전략협의회 상정 안건을 발표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영상 갈무리>
다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정교하게 선별하면서도 선택과 집중 과정에서 영세·초기기업의 지원 사각지대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정책 성패가 달릴 것으로 보인다.
28일 정부에 따르면 전날 재정운용전략협의회에서 발표한 '전 부처 중소기업 지원사업 효율화 방안'은 2027년부터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창업·소상공인 지원사업 전반에 '성장성·잠재력 확인체계'를 안착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
최근 3년 평균 매출 또는 고용 증가율이 5% 이상인지를 통해 성장성을 살펴보고 기술보증기금과 한국평가데이터의 AI 기반 기업평가에서 상위 30% 안에 드는지 등을 토대로 성장잠재력을 판단한다. AI 평가는 재무와 기술, 인력, 인프라 등 수십 개 지표를 복합 분석한다.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 자체를 '성장촉진과 성과'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취지에서다.
올해 중앙부처가 운영하는 중소기업 지원사업은 22개 부처 671개, 31조 원 규모다. 정부는 이 가운데 17개 부처 472개 사업을 점검해 232개를 통폐합·폐지하거나 감액하고 2027년 예산안에서 모두 4조 원을 줄이기로 했다.
50억 원 미만 소액사업 196개 가운데 53개를 감축하고 기업당 지원액이 5천만 원 미만인 사업 106개 중 12개를 폐지한다. 고업력기업 중심의 중소기업 정책자금도 2677억 원 감액해 혁신 창업기업 지원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나선 배경에는 기존 지원정책이 기업의 실질적 성장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2024~2025년 중소기업 지원사업 성과평가에서 '개선 필요' 판정을 받은 34개 사업 가운데 16개, 47%는 이듬해 오히려 예산이 늘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도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중소기업 현황과 지원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현행 규모 중심·보편지원 체계 아래에서는 생산성과 성장성이 낮은 기업에 정책자원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배분되고 있다며 성장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선별하는 기능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정부 지원은 기업의 매출과 고용을 늘리고 폐업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를 냈지만 생산성과 수익성, 설비투자를 높이는 중장기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한국은행은 지원 예산을 늘리지 않더라도 지원 대상과 기준, 구조조정 방식을 개선하면 총생산을 0.4~0.7%가량 높일 여지가 있다고 봤다.
정부는 구조조정으로 확보한 재원을 고성과 사업과 신성장 분야 등 전략사업에 재투자한다. 신성장 분야 혁신기업 육성도 주요 재투자 대상 가운데 하나다.
신안보와 제약바이오, 기후테크, K-소비재 등 4개 분야에서 해마다 혁신기업 300곳을 선정해 사업화와 금융, 수출, 인력, 연구개발(R&D)을 묶어 지원한다. 정부는 이를 '최상위 1% 혁신기업'을 발굴해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시했다.
기업별로 '성장 디렉터'를 붙여 먼저 2년 동안 지원하고 목표 달성 여부를 평가한 뒤 성과를 낸 기업에는 3년을 추가해 최장 5년 동안 기업당 최대 100억 원 플러스알파(+α)까지 지원한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골라 집중 지원하는 정책이 처음 시도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11년부터 '월드클래스300'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의지와 잠재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을 선정해 R&D와 해외마케팅, 금융 등을 연계 지원했다. 월드클래스300은 매출 증가율과 R&D 투자비율 등 정량지표를 기본요건으로 두고 전문가 평가와 현장실사 등을 거쳐 지원기업을 선정했다.
하지만 성장기업을 미리 선별하는 방식에서는 기업 자체의 경쟁력과 정부 지원에 따른 성과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4회계연도 재정사업 성과평가'에 따르면 2011~2013년 월드클래스300 선정기업의 지원 전 평균 매출 증가율은 9.6~12.1%로 당시 사업의 매출 증가율 성과목표인 8%를 이미 웃돌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선정기업들이 지원 전부터 성과목표를 웃도는 성장세를 보인 만큼 지원기업 매출 증가율 8%라는 성과목표가 사업 성과를 과대평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정부가 고성장기업인 '가젤형 기업'을 선별해 집중 지원한 사례에서도 성장성과 함께 기업 안정성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젤형 기업은 최근 3년 동안 매출액이나 고용이 연평균 20% 이상 증가한 기업으로, 정부는 2014년부터 정책자금 등을 집중 지원하는 육성사업을 추진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5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에서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가젤형 기업 가운데 19.3%는 부채비율도 연평균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분석하며 고성장기업 지원에서도 지속적·안정적 성장 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중벤처기업부 현판. <중소벤처기업부>
과거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 과제는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을 찾는 것을 넘어 앞으로 성장 가능성과 지속가능성까지 가려낼 수 있는 선별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매출이나 자산 등 규모 기준에 치우치기보다 업력과 생산성, 혁신역량 등을 지원 대상의 핵심 선별 기준으로 삼고 민간의 심사·투자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신성장 혁신기업 선정에서도 AI·빅데이터 기반 성장성·잠재력을 확인하는 데 더해 교수·연구원, 창업기획자·벤처캐피탈·기업형 벤처캐피탈(AC·VC·CVC)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평가와 서류·현장평가, 심층토론을 거친다.
선택과 집중 과정에서 성장 기반이 취약한 기업이 지원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26일 정부 사전브리핑에서도 기업당 5천만 원 미만 지원이나 50억 원 미만 사업이 영세 중소기업에는 최소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용순 중기부 중소기업정책실장은 "기초체력의 버팀목이 되는 예산일 수도 있다"며 "일률적으로 5천만 원 미만이나 50억 원 예산 사업 전체를 삭감한 것은 아니며 저성과와 중복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효율화했다"고 설명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도 27일 서울 예금보험공사에서 주재한 제2차 재정운용전략협의회에서 "이번 효율화는 중소기업 지원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며 앞으로는 성장성과 잠재력이 확인된 기업을 중심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집중지원 정책의 사례를 고려하면 이미 잘 성장하던 기업의 기존 성장세를 정부 지원의 성과로 평가하지 않도록 지원에 따른 추가 효과를 제대로 검증하고, 매출·고용 등 외형적 성장만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지 않는 정교한 선별·성과평가 체계가 정책 실효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아직 성과를 수치로 입증하지 못한 초기 혁신기업이나 영세기업이 성장성이라는 하나의 잣대에 밀려 지원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정부가 내건 '나눠주기'에서 '키우기로'의 전환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