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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저널] 절친 할아버지의 손자들이 '원수' 된 사연, 고려아연 어쩌다 최씨와 장씨 전쟁터 됐나

윤휘종 기자 yhj@businesspost.co.kr 2025-04-17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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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저널] 절친 할아버지의 손자들이 '원수' 된 사연, 고려아연 어쩌다 최씨와 장씨 전쟁터 됐나
▲ 영풍그룹의 두 창업주,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는 ‘형제’보다도 가까웠던 사이로 알려졌다. 하지만 후손들은 고려아연이라는 전쟁터에서 서로 맞붙고 있다. 사진은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왼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1차전에서 최씨 일가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됐다. 고려아연 측은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을 무기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25.42%의 의결권을 무력화시키면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영풍그룹 오너일가인 장씨 일가, 그리고 그들과 손을 잡은 MBK파트너스가 법적 대응을 이어나가고 있고, 이사회 진입도 계속 시도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영풍그룹의 두 창업주,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는 ‘형제’보다도 가까웠던 사이로 알려졌다. 그 후손들은 왜 고려아연이라는 전쟁터에서 서로 맞붙게 된 것일까?

영풍의 모태, 두 창업주의 의기투합에서 시작된 동행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영풍그룹의 사업 가운데 일반 소비자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영풍문고'이지만, 그룹의 실질적 주력 사업은 아연·납·구리 등 비철금속 제련이다. 그리고 이 비철금속 제련 사업의 중심에 있는 기업이 바로 고려아연이다.

영풍그룹의 출발점은 1949년 세워진 영풍기업이다. 

황해도 출신 장병희와 최기호, 두 창업주는 해방 이후 월남해 남대문시장에서 각각 농기계와 발전기를 팔며 생계를 꾸려오다가 서로의 사업 수완을 인정하며 급속히 가까워졌다. 결국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영풍기업을 공동 설립했다.

광산업을 주력으로 하던 영풍그룹의 주력 사업이 변화한 계기가 바로 1974년 고려아연의 설립이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소재 자립’ 기조에 발맞춰 영풍은 50%를 출자해 고려아연을 설립했다. 나머지 50%는 국고 지원과 외부 투자자 등으로 충당했다. 

두 창업주의 돈독한 관계는 각 가문의 2세대인 장형진(장병희 창업주의 장남) 회장, 최창걸(최기호 창업주의 장남)으로도 이어졌고, 지분 역시 지주회사격인 영풍의 지분을 비슷한 수준으로 나눠 가지며 공동경영 체제를 유지해왔다. 

◆ 무너지기 시작한 균형, 지분 매각과 순환출자 해소

이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대 장형진, 최창걸 회장 때다. 2000년대 들어 최씨 일가가 조금씩 영풍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씨 일가가 영풍 지분을 매각한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최씨 일가의 개인 사업이 실패해 자금이 필요해졌다, 다른 계열사의 승계를 위한 상속 자금이 부족했다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을 뿐이다. 

같은 시기 장씨 일가는 오히려 영풍, 코리아써키트, 서린상사 등 그룹 주요 회사들의 지분을 오히려 사들이면서 그룹 지배구조의 무게추가 장씨 일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씨 일가는 영풍 지분 10%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서린상사의 최대주주였고, 이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최씨 일가는 여전히 영풍에 어느 정도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에 대한 최씨 일가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모습을 보였기에 겉으로는 공동경영이 계속 유지됐다.

전환점은 2017년이었다. 정부가 순환출자 해소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영풍그룹 역시 영풍->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결국 장형진 회장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서린상사가 보유하고 있었던 영풍 지분 10%를 완전히 사들였고, 서린상사의 영풍 지배력이 사라지면서 영풍에 대한 최씨 일가의 지배력도 함께 사라졌다. 

2024년 사업보고서 기준 영풍 지분은 장씨 일가가 29.29%, 장씨 일가가 대주주로 지배하고 있는 영풍개발이 15.53%를 보유하고 있다. 최씨 일가는 영풍 지분의 6.16%를, 최씨 일가가 대주주로 지배하고 있는 영풍정밀은 4.39%를 들고 있다. 

◆ 고려아연 대표 오른 최윤범, 계열분리의 신호를 보이다

문제는 영풍그룹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석포제련소가 환경 규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으로 악재가 겹치는 상황에서 고려아연은 여전히 수천억 원, 많게는 1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풍의 사업이 계속 난항을 겪으면서 영풍에게 고려아연의 배당금은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가 됐다. 영풍은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당기순손실 834억 원, 3278억 원을 냈는데 고려아연에게서 받은 배당금은 2023년 1607억 원, 2024년 824억 원이다. 

이런 상황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게는 마뜩찮은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4년 3월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은 주당 5천 원의 결산 배당 안건을, 영풍은 주당 1만 원의 결산 배당 안건을 상정했고,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측 손을 들어주면서 최씨 일가가 ‘판정승’을 거뒀다.

루비콘 강을 건넌 최씨 일가는 본격적으로 독립을 준비했다. 

현재는 KZ트레이딩으로 이름을 바꾼 서린상사는 고려아연과 반대 상황에 놓여있는 기업이다. 대주주는 최씨일가지만, 당시 경영은 장형진 회장의 둘째 아들인 장세환 서린상사 대표이사가 맡고 있었다. 

2024년 6월, 서린상사는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원래 고려아연 측 4명, 영풍 측 3명이었던 이사회를 고려아연 측 8명, 영풍 측 2명으로 재편했다. 장세환 대표는 사임했다.

최윤범 회장의 ‘독립 준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 회장은 LG화학, 한화와의 자사주 맞교환 등을 통해 고려아연 독립을 위한 우호지분 확보에 나섰고, 업계에서는 사실상 최 회장이 계열분리를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장씨 일가는 이에 맞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함께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돌입했다. 최윤범 회장의 독립 시도에 제동을 걸기 위한 대응이었다. 

이에 더해 장형진 회장과 최윤범 회장 사이 경영 철학에 대한 차이도 갈등의 불씨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 회장은 ‘무차입 경영’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신중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스타일이라면, 최 회장은 과감하게 신사업을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장 회장은 2024년 9월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최 회장이 고려아연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외로웠다”라며 “나는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사업을) 하자고 했고, 그런 면에서 의견차가 있었다”고 말했다.
 
[씨저널] 절친 할아버지의 손자들이 '원수' 된 사연, 고려아연 어쩌다 최씨와 장씨 전쟁터 됐나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오른쪽)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2013년 서울 논현동 영풍빌딩 회의실에서 정기 이사회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영풍그룹>
◆ 고려아연, 계속될 ‘지배구조 전쟁’의 무대

문제는 이 싸움이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 둘 모두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핵심 수익원일 뿐 아니라, 다른 계열사들 역시 고려아연을 향한 매출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독립에 성공한다면 영풍그룹 전체 구조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면 최씨 일가는 영풍그룹에서 고려아연과 KZ트레이딩(옛 서린상사), 영풍정밀의 경영권만 쥐고 있다.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상실하게 된다면 사실상 영풍그룹에서 최씨 일가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친했던 두 사람의 후손들이, 75년 공동경영의 끝에서 날을 세우고 있다. 

일단 제 1라운드는 최씨 일가의 우세로 마무리됐지만,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MBK파트너스와 장형진 회장은 소송 등을 통해 재반격에 나설 뜻을 내비쳤고, 지배구조와 의결권 등에 대한 법적 판단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법정싸움 뿐만 아니라 내년 주주총회에서의 반격도 기다리고 있다”라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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